경제·금융 정책

[단독] AIIB 새 부총재직 佛로 넘긴 中 … “韓, 국장급도 보장 못해”

진리췬 총재, 지난주 정부 고위 관계자에 통보

"CRO 포함 6개국 국장자리도 성과위주로 공모"

4조 분담금 내고도 요직 놓쳐 책임론 불가피





우리나라가 4조원을 출자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 요직을 단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AIIB의 대주주인 중국은 우리 몫이던 부총재직을 프랑스로 넘긴 데 이어 공모절차가 진행 중인 국장급에 대해서도 “한국의 자리를 보장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10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일 진리췬 AIIB 총재가 중국 베이징에서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를 만나 우리 몫의 AIIB 부총재직을 프랑스로 넘긴다고 미리 알린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진리췬 AIIB 총재는 오는 10월 AIIB CFO인 티에리 드 롱게마르를 임명하고 홍 부총재 자리(CRO·최고위험관리책임자)를 국장급으로 격하한 후 공모를 진행할 것이라고 미리 전했다”고 설명했다. AIIB는 우리 정부 인사가 맡고 있던 CRO의 직위를 강등, 교체하면서 사전 협의조차 하지 않았던 셈이다. 실제로 이 만남 직후 AIIB는 홈페이지를 통해 재무담당 부총재직(Vice President-Finance)을 신설하고 이에 대한 후보자 공개채용에 나선다고 공모했다. 부총재에서 국장급으로 격하된 CRO를 포함해 총 4개의 부총재(CF0)·국장급(Director General Level) 자리도 공모한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AIIB가 부총재에서 국장급으로 격하된 CRO 자리도 우리나라가 다시 차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AIIB는 지난주 우리 정부와 가진 회의에서 “새로 뽑는 6개 자리는 철저히 성과 위주(Merit-based)로 선정하겠다”며 “한국이 국장직을 얻으려면 CRO 자리뿐만 아니라 6개 공모 국장 자리에 모두 지원해야 한다”고 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홍 전 AIIB 부총재의 돌발 행동으로 우리 정부가 약 4조3,000억원을 부담하고도 AIIB 내에서 요직을 단 한자리도 못 얻을 상황에 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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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IB 창립 당시 우리나라(3.81%)는 57개 회원국 가운데 중국(30.34%)과 인도(8.52%), 러시아(6.66%), 독일(4.57%)에 이어 지분이 다섯 번째로 많은 점을 인정받아 부총재(5개)직 가운데 하나를 차지했다. 하지만 홍 전 부총재는 KDB산업은행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논란이 된 ‘대우조선해양 경영자금 4조원 부실 지원’과 관련, “(지원은) 정부가 결정했고 산업은행은 들러리만 섰다”는 폭로성 언론 인터뷰로 파문을 일으킨 후 ‘책임론’이 불거지자 지난달 27일 정부와 교감 없이 돌연 국제기구 부총재직을 휴직해 자리를 날렸다.

어찌 됐든 우리 정부로서는 4조원이 넘는 분담금을 내고 얻은 국제기구의 중요 자리를 잃게 됐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AIIB 부총재직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방한한 진리췬 AIIB 총재를 만나 “부총재 자리를 한국에서 맡게 해달라”고 간곡히 당부할 만큼 핵심 자리였다. 더욱이 중국 주도인 AIIB 참여는 우리의 오랜 우방인 미국과의 외교 마찰도 감수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잘못 보낸 낙하산으로 국제적인 망신은 물론 국가 이익도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다.

AIIB 내에서 중요한 보직을 한 자리라도 획득하지 못하면 한국의 위상 하락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산은·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AIIB를 활용해 아시아인프라 사업과 관련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수주에 적극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계 고위인사는 “(이번 사태는 이번 정부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무리한 낙하산 인사를 밀어붙인 데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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