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비행체 드론(Drone) 시대의 개막이 눈앞에 다가왔다. 전문가들 중에는 미래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드론이 설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추세에 맞춰 이미 다수의 선진국들은 앞다퉈 드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드론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과연 되어 있는 것일까? 포춘코리아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박춘배 한국드론산업진흥협회 부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6월 중순,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드론산업진흥협회 사무실에서 박춘배 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시작부터 드론의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드론은 멀티콥터(Multicopter · 두 개의 회전날개를 이용해 뜨고 추진하는 형태의 헬리콥터)라고 불러야 정확하다는 것이다. 현재 취미 · 레저용으로 판매되는 소형 드론은 모두 멀티콥터다. 박 부회장은 국내 드론 산업에서 주목해야 할 분야는 멀티콥터가 아닌 큰 틀의 ‘무인항공기(UAV · Unmanned Aerial Vehicle)’라고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자 박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30~40년 전에도 군사용 무인항공기는 존재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보유하고 있었죠. 하지만 무인항공기가 처음 대중의 품으로 들어온 건 불과 3~4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가 멀티콥터가 처음 출시된 시점이었거든요. 그때부터 국내 드론 개발사들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모든 업체들이 멀티콥터라는 비행체 제작에만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무인항공기에 탑재하는 수많은 센서나 소프트웨어 개발보단 우선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멀티콥터에 포커스를 맞춘 거죠. 현재 협회에 등록된 300여 곳의 드론 제작사 모두는 엄밀히 따지면 멀티콥터 제조사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미 선진국 제조사들은 기기 제작을 넘어 첨단 기술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도 말이죠. 지금이라도 ‘무인항공기’라는 폭넓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 드론시장의 규모는 약 1조6,000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박 부회장은 “사실 국내 드론시장은 시장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규모”라면서도 “인색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기술력은 전 세계 드론시장 톱10에 오를 만큼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기술력은 전세계 드론 시장을 이끌고 있는 미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박 부회장은 특히 중국 드론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DJI와 이항(Ehang) 등 중국 드론 업체들은 글로벌 민간 드론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DJI의 경우 전세계 상업용 드론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다. DJI는 최근 서울 홍대 인근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며 국내 시장에서도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부회장은 국내 드론 업체들이 나아갈 방향 중 하나로 중국과의 협력을 꼽았다. 현재 중국 드론 업체들은 국내 제품 가격의 약 20% 수준으로 부품 및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미 국내 소비자들도 중국산 드론 완제품 및 부품을 온라인 마켓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제품을 이용하거나, 업체가 구매한 부품을 활용해 드론을 제작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호환성이 좋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이다.
현재 국내에서 제작되는 취미용 드론의 전파 출력은 10밀리와트(mW)다. 반면 중국 제품은 200~300mW로 제작되고 있다. 드론 개발 및 비행 과정에서 전파 출력은 매우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전파 출력이 약하면 약할수록 비행 거리가 짧아진다. 무엇보다 전파가 다른 드론이 동시에 같은 영역을 비행할 경우, 출력이 낮은 비행체는 전파 간섭 때문에 추락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최근 열린 국내 드론 경주 대회에서 중국산 드론 한 개 때문에 국내산 드론 5~6개가 한꺼번에 낙하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있었다.
물론 출력의 문제가 곧 기술력의 차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박 부회장에 따르면, 중국 드론 업체들은 자사의 부품과 제품이 저렴한 가격 탓에 오히려 성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하고 있기도 하다.
박 부회장은 이 같은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중국과 한국이 드론 부품에 대한 표준화 체계를 함께 만든다면, 양국 모두가 글로벌 드론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부회장은 이에 대해 언급하면서 최근 중국을 방문했을 때 겪은 일화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박 부회장은 말한다. “최근 중국 충칭(重慶)시를 방문했습니다. 무인항공 시장 관련 업체를 방문하던 도중 중국 공산당 서기 한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드론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 어떻게 협력하는 게 좋은지 그 방안에 대해 논의하게 됐죠. 그때 저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양국의 공통된 표준화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 드론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인 만큼, 한국 시장에서 중국 회사들이 부품인증을 받는다면 해외시장 진출이 보다 더 쉬워질 거라고요. 제 말을 들은 서기관이 무릎을 탁 치면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후 공산당대회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한국과 중국의 기술 표준화 체계 구축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제 의견이 전달된 것으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뿌듯한 마음은 들더라고요(웃음).”
박춘배 부회장은 중국기업과의 협력은 글로벌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수반돼야 할 사항이 있다고도 했다. 올바른 국내 무인항공기 생태계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중소기업이 규모와 투자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대기업과 정부가 적극적인 투자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와 연구기관이 어우러진 일종의 ‘무인항공기 클러스터’가 조성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부회장은 말한다. “현재 국내 무인항공기 시장은 결코 중소기업 과 스타트업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자생해야 하는데, 대기업의 하청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거죠.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닙니다. 상생의 모델을 찾아야 해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적극적으로 대기업을 찾아 기술력을 입증하고 투자를 받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대기업들의 시선과 인식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에요.”
대다수 전문가들은 드론 시장에서 대기업 역할 못지않게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드론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과연 박 부회장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기자의 질문에 박 부회장은 다소 의외의 답변을 했다. 무조건적인 규제 철폐는 오히려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의미일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규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무인항공기 시장을 독점해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소위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보호하는 규제는 필요합니다. 그래야 국가 차원의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무인항공기의 비행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안전사고 관련 규제는 풀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규제’가 아닌 ‘안전 규칙’ 혹은 ‘안전 규범’으로 봐야 하죠. 문제는 최근 정부의 기조가 ‘드론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규제는 무조건 다 푼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거예요. 무엇이 안전 규칙인지, 무엇이 규제인지에 관한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조차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박 부회장은 이 같은 규제 논란의 대표적인 사례로 드론의 중량과 관련된 규제 완화를 언급했다. “최근 정부는 비행승인과 기체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드론의 범위를 ‘자체 중량 12kg 이하’에서 ‘최대 이륙 중량 25kg 이하’로 확대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승인이 필요 없는 25kg짜리 드론이 비행 중 인구 밀집 지역에 추락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장난감 드론에도 다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25kg이라면 더 큰 피해가 우려되죠. 드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중량에 따른 신고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좀 더 세분화 된 규제가 필요합니다. 크게는 5kg, 적게는 1kg 단위로 드론 중량 기준을 세분화하고, 이에 따라 허용 고도 및 비행 가능 지역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드론의 비행에 따라 우려되는 안전성 논란은 철저하면서도 세분화 된 안전 규칙으로 최소화 해야 합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를 유념해서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박춘배 부회장에게 드론 시대의 개막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상에 대해 물어봤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드론 시대의 개막은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을까? “저는 드론, 더 나아가 무인항공기가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드론의 상용화만 이뤄져도 새로운 시장이 생성될 수 있죠. 예컨대 드론에 작은 카메라를 부착해 촬영한 영상은 기존 영상 콘텐츠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영상을 활용한 부가 콘텐츠도 생겨날 수 있죠. 비단 이뿐만이 아닙니다. 농업을 예로 들어볼까요. 지금도 농촌에선 대규모 부지에 농약을 뿌리는 과정에서 드론과 유사한 비행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만약 드론에 전체 대지의 농약 살포 현황을 자동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탑재한다면, 농민들이 직접 현장에 나갈 필요 없이 드론이 알아서 농약을 뿌릴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농약이 과도하게 뿌려진 곳은 알아서 피해 가는 식이죠. 이는 드론을 활용한 스마트 농장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파일럿 없이 승객을 태우고 비행하는 항공기의 상용화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입니다. 물론 일각에선 수년 내에 1인용 무인 항공기의 상용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에겐 지금 당장의 상용화가 시급하진 않습니다. 좀 더 차분하게 무인항공기에 필요한 센서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나간다면, 한국이 10년 이내에 글로벌 드론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배가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