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사는 행시 28회인 문 실장의 용퇴로 가능했습니다. 문 실장은 최경환 전 부총리가 취임한 직후인 2014년 8월 세제실장에 올라 가계소득 3종 세트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업무용 승용차 과세 등 굵직한 세법 개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13월의 세금 폭탄 논란으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던 지난해 초에는 연말정산 재정산 작업을 맡아 빠른 시간에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문 실장은 전임자들처럼 관세청장이라는 비단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최 전 부총리 시절 기재부의 인사 독식 논란의 후폭풍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최 전 부총리가 물러난 이후 기재부 간부들의 여타 부처 옮겨가기 행렬이 뚝 끊어졌다는 것이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실제 관세청장은 11년 만에 내부 승진이 이뤄졌습니다.
문 실장은 그동안 적지 않은 마음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직제상 위인 최상목 1차관(29회)과 송언석 2차관(29회)이 고시 후배인데다 세제실 후배들에게도 짐이 되는 것이 부담이었다고 합니다. 본인이 앞으로 갈 자리에 대한 걱정보다는 세제실장 출신으로서 영전하지 못하고 용퇴하는 사례로 남는데 마음이 더 복잡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기재부의 이번 인사 타이밍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세제실로서는 1년 중 가장 큰 농사인 세법 개정안 발표를 불과 3주 가량 앞둔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흔히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재부는 이 같은 불문율을 깨고 이번 인사를 단행 했습니다. 물론 세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사실상 확정돼 실장과 국장들이 바뀌어도 후속 작업을 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왕 늦어진 인사, 문 실장이 세법 개정안까지 발표하고 30년 공직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지 생각해봅니다. 그동안 인사 적체에다 신망이 두터웠던 전임 실장을 보직 없이 떠나 보내야 하는 세제실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입니다. 이에 대해 기재부 인사실 관계자는 “세법개정안 발표부터 국회 통과까지 일련의 과정을 앞두고 조직 재정비 차원에서 이뤄진 인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신임 최영록 실장은 세제실에서 공직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전통 세제맨입니다. 기재부는 최 실장이 “명실상부한 세제전문가로서 조직 내 신임이 두텁고 강한 책임감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며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올해 세법개정을 포함한 향후 세제개편을 추진해 나갈 최적임자”라고 선임 배경을 밝혔습니다.
최 실장은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회에서 ‘증세는 없다’는 정부의 입장과 달리 법인세 인상 등을 주장하는 야당의 공세를 막아내야 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최 실장이 후배들을 잘 다독여 세제실이 순항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길 바랍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