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멕시코 대통령의 환영 만찬장. 검은 정장 일색인 각료들 사이에서 도발적인 옷차림의 여성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금색 바탕에 빨강 꽃무늬를 수놓은 오버코트,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반짝이 부츠를 신고 등장한 이는 바로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이었다. 눈치 없는(?) 메이 장관의 알현을 받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반응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메이 장관은 표범 무늬의 뾰족구두나 영국 국기 문양의 신발을 즐겨 신으며 구두 수집이 취미라는 이유로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와 비교될 정도다.
26년 만에 영국 여성 총리에 취임할 테리사 메이는 ‘제2의 대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의 무덤이라는 내무부 장관을 6년이나 버텨내며 경찰 개혁과 강경한 이민대책을 주도해온 탓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마저 메이를 무서워했고 다른 각료들이 공개 석상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평소 무뚝뚝한 어조에 똑 부러지는 일 처리로 존경을 받지만 대중적 인기는 별로 없는 편이다.
메이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과정에서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아 소극적인 잔류파로 불린다. 당내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어 이탈파와 잔류파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경제적 위험을 우려해 브렉시트를 지지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경제가 무너져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평소 소신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성공회 성직자의 딸로 태어나 보수적인 가치관이 강하지만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하는 진보적 개혁가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영국에 두 번째 여성 총리가 탄생한 데 이어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도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서방세계에 여성 지도자가 잇따라 등장하면 내년 주요7개국(G7) 정상들의 모임도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지 않을까 싶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