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은행

"외감법 독소조항이 분식회계 키워"…은행권 뿔났다

현행 법상 '회계법인 부실감사' 금융사가 직접 입증해야

은행권 "증거 확보도 힘든 불합리한 구조" 불만 목소리

"회계법인, 손배소 리스크 없어 기업부정에 소극적 대처"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기업의 분식회계 문제가 금융권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가운데 현행 법 체계가 지나치게 회계법인에 유리한 구조로 설계됐다는 은행권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천문학적 분식회계를 감사보고서 작성 주체인 회계법인이 걸러내지 못해도 현행 법 체계에서는 해당 기업의 감사보고서를 믿고 대출을 집행한 금융회사가 회계법인에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분식회계의 책임을 회계법인에 묻기 어려운 법적 한계에 따라 기업들의 분식회계 문제는 해마다 불거지고 대출을 집행한 금융권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문제를 계기로 회계법인과 금융회사 간의 회계 부실 입증 책임 관련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갈등의 소지가 되는 법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이다.

현행 외감법은 원칙적으로는 부실회계로 인해 손해배상소송이 발생할 경우 회계법인이 손해배상 책임의 면책을 위해 스스로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규정(외감법 17조)돼 있다. 하지만 손배소를 제기하는 원고가 회계법인을 선임한 회사 또는 은행, 보험회사, 종금회사,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 일 경우에 한해서는’ 해당 회사가 회계법인의 임무 해태를 증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다시 말해 특정 기업체의 분식회계를 회계법인이 회계감사에서 적발해내지 못했고 이에 따라 대출금 미회수 등의 피해를 금융기관이 입었다 해도 손배소 과정에서는 금융기관이 회계법인의 업무 해태를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의 사례에서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업무 해태를 증명해야 손배소에서 승소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단서 조항은 지난 2008년 외감법에 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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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은 이 같은 단서 조항이 사실상의 ‘독소조항’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감사인인 회계법인은 기업의 회계자료 요구권이나 재산 상태 조사권 등을 갖고 있으나 금융회사는 이 같은 권한이 없고 재무제표만으로 기업을 판단해야 해 회계법인의 책임을 입증할 수단이 막막하다. 회계 업계는 미국 역시 이 같은 소송에서 입증 책임이 금융기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 소송시 관련 서류를 원고와 피고가 상호 간 공개하는 증거개시제도가 도입돼 있어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국내 한 대형 법무법인의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하지 않아 제3자가 회계법인의 감사조서 등의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우므로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를 입증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로 인해 회계법인이 기업의 분식회계를 적발해내는 데 소극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만약 손배소의 위험에 회계법인이 노출돼 있다면 당장의 감사 수수료보다는 손배소에 따른 리스크를 철저히 고려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손배소의 리스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는 일감을 주는 기업의 분식회계 가능성에 철저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최근 금융 당국이 분식회계 방지를 위해 제도 개선에 시동을 걸고 있으나 정작 외감법의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입증 책임의 전환 조문을 바로잡아야만 회계감사의 책임 소재가 제대로 정립된다”며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이 역할을 해주기를 원한다면 은행이 기업체를 부실 감사한 회계법인의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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