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메릴린 먼로·제임스 딘… 한 시대를 풍미한 은막 스타들이 국악이라는 옷을 입고 스크린에서 깨어난다. ‘영화와 국악의 조화’라는 색다른 만남을 펼칠 국립극장의 ‘여우락 영화관’(21~22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을 통해서다. 이 낯선 만남을 연결할 다리 역할은 피아니스트 겸 영화·드라마·뮤지컬 음악감독 이지수(사진)가 맡았다.
“영화 음악을 단순히 국악기로 연주한다고 생각하면 서운해요. 영상도 음악도 완전히 새롭게 요리해 선보이는 무대가 될 거예요.” 올해로 2회째인 여우락 영화관은 영화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라이브 국악 연주와 함께 선보이는 필름 콘서트다. 올해 콘서트에서는 메릴린 먼로와 진 켈리·클린트 이스트우드·제임스 딘·오드리 헵번·비비안 리 등 총 6명의 영화배우가 출연한 대표작을 각각 10분으로 축약하고 이에 걸맞은 새 음악을 입힌다.
영화 올드보이(작곡)와 건축학개론(음악감독) 등에 참여한 이 감독은 지난해에 이어 이 공연의 작·편곡을 맡았다. “진 켈리 주연의 ‘싱잉인더레인’은 영화 속 탭댄스 장면을 실제로 배우가 나와 춤추고 노래하게 할 거예요. 이때 ‘양금’이라는 울림 좋은 악기를 넣어 경쾌한 음색을 만들어 내죠.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은 장구나 태평소, 피리 같은 강인한 남자 느낌의 악기를 주로 사용해서…” 작품별 콘셉트를 줄줄이 풀어내지만, 서양 영화에 국악을 입히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는 “한국 고전 영화를 상영한 지난해보다 이번 작업이 훨씬 어렵다”며 “국악기로만 영상 속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 서양의 화성 체계를 입히고, 호른·트럼본·첼로·베이스 등 중저음을 담당할 서양악기를 일부 사용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어 “국악은 반음계가 없어 악기 조율을 바꿔 ‘없는 음’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 작업보다 제한이 많은 편이지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 의미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 감독은 국악과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사람이었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그는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의 피아노 연주 대역을 맡은 것이 인연이 돼 직접 만든 곡도 OST에 넣으며 데뷔했다. 드라마·영화 음악을 주로 하다 2010년 국악 그룹 ‘미지’의 프로듀서를 맡았지만, 악기 서너 개가 아닌 대규모의 국악 관현악은 지난해 여우락 영화관이 처음이었다. “서양 오케스트라든 국악관현악이든 여러 악기를 이용해 조화를 만드는 것이죠. 악기 특성을 알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악기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죠.(웃음)” ‘악기가 달라도 좋은 곡을 쓰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고민 끝에 도전을 결심했고, 색다른 공연에 대한 관객의 호평으로 올해 의미 있는 2회를 맞이하게 됐다. 김 감독은 “‘영화 음악을 악기만 바꿔 연주하는 것이겠지’하고 기대를 낮추고 왔던 관객이 새로운 음악과 영상에 좋은 평가를 보내줬다”며 “올해 역시 색다른 국악과의 만남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내년 국립창극단의 신작 ‘미녀와 야수’에서 작곡을 맡아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