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이 지나가는 인왕산 정상 바로 아래 바위를 ‘치마바위’라고 부른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전처인 단경왕후 신씨가 자신의 연분홍 치마를 펼쳐놓았다는 곳이다. 중종은 신수근의 딸과 혼인했는데 연산군의 심복이었던 그는 반정 과정에서 역적으로 처단된다. 역적의 딸이라는 이유로 신씨도 쫓겨났다. 신씨가 중종이 자신을 생각하도록 바위에 치마를 걸어놓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애틋함은 일제시대에 변질됐다. 중일전쟁 이후 전시동원체제를 강화하던 일제는 1939년 서울에서 이른바 ‘대일본청년단회의’를 열고 이를 기념한다며 치마바위에 글씨를 새겼다. 사진의 오른쪽 ‘동아청년단결’로부터 시작하는 100여 글자다. 해방 후 글자를 쪼아냈는데 흔적이 너저분하게 남아 있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