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음의 잔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관객들은 더 못 기다리겠다는 듯 박수를 쏟아냈다. 끊이지 않는 갈채에 연신 꾸벅이며 인사를 건네던 연주자가 앙코르(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 中 ‘사라방드’)를 위해 다시 피아노 앞으로 자리하자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쉽게 듣기 힘든 날카로운 환호성까지 터져 나왔다.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협연 무대는 여전히 뜨거운 ‘조성진 신드롬’을 실감하게 한 자리였다.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을 유지한 채 쇼팽의 맑고 섬세한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낸 조성진이라는 연주자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한 무대이기도 했다.
서울시향의 올 시즌 하이라이트라고도 불린 이날의 공연 분위기는 조성진이 쇼팽국제콩쿠르 우승 후 고국에서 가진 첫 무대였던 2월의 갈라 콘서트 때보다는 한결 차분했다. 머뭇거림 없이 시작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피아니스트가 지난해 열린 쇼팽콩쿠르의 결선에서 연주했던 곡으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아직 앳된 얼굴의 연주자는 믿을 수 없는 침착함으로 쇼팽이 가진 서정성과 애수를 전달해가기 시작했다. 연주자의 손가락이 쉼 없이 건반을 내달리는 30분 동안 콘서트홀은 놀랄 만큼 투명하고 섬세한 선율들로 가득 찼고 관객들은 숨죽여 그의 연주에 귀 기울였다. 가장 여린 음을 짚을 때 더욱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은 역시 조성진이라는 연주자의 탁월함이었다.
이어진 2부에서는 서울시향의 연주력이 빛을 발했다. 조성진과 함께한 1부에서 실력발휘를 제대로 못 한 듯 보였던 시향은 차이콥스키 4번과 함께 훨훨 날았다. 조성진의 얼굴을 보기 위해 1부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떴던 팬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프랑스의 거장 얀 파스칼 토틀리에는 포디움이 좁은 듯 오가며 온몸을 사용한 역동적 지휘를 선보였다. 시향은 거구의 지휘자가 뿜어내는 열기에 동화된 듯 차이콥스키 특유의 화려함과 박진감을 극도로 끌어올린 연주를 선사했다. 공연 중간 악장의 바이올린 현이 끊어지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지휘자는 바이올린을 대신 전달해주려는 흉내까지 내며 유쾌하게 위기를 넘겼다. 연주 후 1부 못지않은 뜨거운 기립 박수가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이날 콘서트는 시작 전부터 열기가 뜨거웠다. 지난해 11월 티켓이 오픈 되자마자 매진된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3~7배까지 치솟아 암표로 거래되기도 했다. 당초 조성진의 사인회를 준비했다가 안전을 문제로 취소한 음반사는 대신 사인 CD를 풀었는데 150여 장 가량 준비된 물량은 풀자마자 동이 났다. 아이돌 그룹 공연장에서나 만나볼 법한 머천다이징(MD) 상품까지 등장했다. 조성진의 얼굴이 그려진 메모지와 연필 등으로 구성된 패키지 400개가 클래식 팬들의 성원 아래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