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단독] [핫이슈] 4개월새 후판 원가 50%↑…조선 사정 들어주다 철강까지 부실 전염될 판

후판값 인상 쐐기박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

"후판 사업 수익성 갈수록 악화…더 이상 손해 보며 장사 못해"

"후판 1% 오르면 영업익 0.1% 줄어" 조선사들은 인상 요구안 보이콧

"정부가 조정 나서야" 목소리도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조선사들의 어려운 상황을 십분 알면서도 선박용 후판 가격을 이젠 올려야 한다고 외치고 나선 것은 일차적으로 원재료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포스코·현대제철과 같은 고로 업체들은 철광석과 유연탄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데 철광석 가격이 연초부터 급등세를 보였다. 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2월 톤당 40.6달러였던 철광석 가격은 올 4월 60달러까지 올랐다. 4개월 사이에 원재료 가격이 50%나 오른 것이다.

여기에 후판 가격을 이번 기회에 정상화해야 한다는 철강업계 의지도 반영됐다.


조선 업황 부진으로 후판 수요가 크게 줄어들면서 조선용 후판 가격은 바닥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유가 하락과 중국 경기 둔화 탓에 글로벌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조선업계의 선박 건조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후판 유통가격은 2010년 이후 꾸준히 톤당 90만~110만원선을 유지했지만 현재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철강사들로서는 위(후판 가격 하락)에서 치이고 아래(원재료 가격 인상)에서 밀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주요 철강사들은 이 때문에 철광석 가격 상승을 일부 반영해 조선용 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철강재 가격 인상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현대제철은 연초부터 꾸준히 열연 가격을 인상해 올해 누적으로 10만원 이상 가격을 올렸다. 그 결과 열연 가격이 과거 호황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톤당 65만원 안팎 수준까지 회복됐다.

철광석 가격 인상이 실시간으로 후판 가격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승세가 이미 수개월 지속됐기 때문에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철강업계 입장이다.


대부분의 철강사와 조선사들은 분기나 반기를 주기로 가격 협상을 벌인다. 이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후판 가격 인상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조선사를 상대로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후판 사업 수익성이 전체적으로 크게 악화해 더 이상은 가격 인상을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손해 보면서 사업을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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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격을 못 올려주는 조선업계도 사정은 있다. 유가 하락으로 주요 대규모 해양플랜트 인도가 지연되고 조선 경기 침체로 선박 수주도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상황에서 후판 가격 인상까지 감내하기에는 무리라는 입장이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규모 감원 조치를 하는 등 쥐어짜내는 마당에 원재료인 후판 가격 인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버겁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후판 가격(톤당 50만원 기준)이 1% 오르면 조선 빅3(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의 연간 영업이익이 0.1% 안팎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현대중공업그룹(중공업·미포조선·삼호중공업)의 경우 지난 1·4분기 기준으로 선박 건조에서 후판·형강과 같은 철강재 매입 투입 금액이 전체 원재료 조달에 투입한 금액의 21%를 차지한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계가 전체적으로 구조조정에 시달리고 있어 후판 가격 인상을 철강사 요구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가격을 놓고 협의하고 있지만 가격 인상이 이뤄진다면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철강사들이 원재료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 압박을 받는 것은 이해하지만 견딜 수 있는 여력이 조선사들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조선사들은 중국산 후판 비중을 늘리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품 품질과 납기 준수, 사후 서비스 등을 고려하면 결국 국내 업체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조선용 후판을 수입해 쓰려면 유통 절차 등 거쳐야 할 단계가 많아 원가 기준으로 따지면 결과적으로 국산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총대를 결국엔 정부가 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한 업종의 상황을 일방적으로 감안해 다른 업종의 희생을 강요할 경우 부실이 전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정부와 채권단이 조선에 이어 철강과 건설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사 상황만을 고려하다가 철강업체들까지 코너에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당국이 양측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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