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임금이냐, 고용이냐.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19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에서 개최한 ‘스페인·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노동 부문 개혁 사례 연구 세미나’에서는 지난 2010년대 들어 노동개혁과 노사협력을 바탕으로 부활하고 있는 르노 스페인 공장과 이탈리아 피아트 사례가 발표돼 저효율·고비용 구조로 위기에 처한 국내 자동차 업계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했다.
2010년을 전후로 경제위기를 맞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위기극복을 위해 가장 먼저 노동시장 개혁에 나섰다. 스페인은 전년 대비 3분기 연속 매출이 감소하면 경제적 사유로 인한 해고가 가능하도록 했고 직무 배정, 지리적 배치, 근무조건 등에 대한 유연성을 확대했다. 이탈리아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개념인 ‘준정규직’을 도입하고 기간제·파견근로 사유 명시 의무를 폐지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이 같은 노동시장 개혁은 자동차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으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높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인건비가 저렴하고 고용 유연성이 확보된 동유럽 등 다른 국가로 공장을 옮기면서 자동차 생산량이 급감했다.
구조조정으로 한때 공장 폐쇄 직전까지 갔던 르노자동차의 스페인 공장은 노사가 2009년 ‘고용·임금’ 빅딜을 시행하면서 극적으로 부활했다. 노조는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임금동결, 초과근무수당 양보, 탄력적 근로시간 운영에 동의했다. 빅딜로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스페인 자동차 생산대수는 2009년 217만대에서 지난해 265만대까지 회복했다.
잦은 노사분규와 고임금 구조를 피해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위기를 맞은 피아트도 노사가 2011년 임금인상 제한, 전환배치 허용 등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임금인상을 양보하는 빅딜을 체결하면서 생산량을 회복하고 있다. 자국 내 생산량이 2012년 38만6,000대에서 지난해 44만8,000대로 늘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고임금과 노사 문제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면서 “스페인 르노와 이탈리아 피아트처럼 고용과 임금의 빅딜로 노사가 상생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