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우리와 그들의 '뉴 노멀'

신경립 국제부 차장



‘설마’ 했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결정을 시발탄으로 국제사회는 숨 가쁜 한 달을 보냈다.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방글라데시 등지에서 라마단 테러가 줄을 이었고 미국에서는 경찰 총격의 희생양이던 흑인이 경찰에게 총구를 겨누기 시작하면서 흑백 대립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터키에서는 실패한 군부 쿠데타 이후 ‘피의 숙청’이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은 프랑스 니스의 트럭 테러에 이어 독일의 열차 도끼 테러로 아수라장이 됐다. 전 세계가 그야말로 ‘카오스’다.

눈코 뜰 새 없이 쏟아지는 대형 사건들을 쫓아가다 보니 이제 웬만한 테러나 변화에도 무뎌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나 시리아에서 폭탄이 터지고 총격이 벌어져도 “늘 있는 일”이라며 큰 관심을 두지 않게 됐듯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벌어지는 테러나 총격에도 크게 놀라지 않게 됐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유럽이 테러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엔리코 레타 전 이탈리아 총리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처럼 공포를 내면화해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3월 벨기에의 공항과 지하철역에서 폭탄이 터졌을 때 이스라엘 정보장관은 “벨기에인들이 자국에서 일부 테러 모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초콜릿이나 먹고 삶을 즐기면서 민주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처럼 보이려고 한다면” 이슬람주의 테러리즘과 싸울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테러와 함께 살아온 이스라엘인들은 기차를 타거나 극장에 갈 때에도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가방을 체크당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장거리 이동은 가급적 피하고 외출도 자제한다. 방학 때면 아이들은 여름 캠프에 가는 대신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늘 조심하고 경계하고 죽음을 의식하는 삶, 그것이 테러가 일상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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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경찰의 흑인 총격과 흑백 갈등이 일상이 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분열돼 있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날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흑인 시위대는 오바마의 ‘달변’으로도 가릴 수 없는 분열과 갈등의 현실을 반영한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국 사회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차원의 증오와 분열로 빠져들 수도 있다. 필리핀과 터키에서는 ‘공포정치’가 새로운 일상이 됐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반복되는 ‘묻지 마’ 혐오범죄는 독버섯처럼 자라는 분노와 적대감이 우리 사회도 뒤덮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이것이 세계가 직면한 암울한 ‘뉴 노멀’이다. 근거 없는 비관론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확인해왔다. 이 모든 혼란과 분열의 근원에는 ‘우리 대 그들(us vs them)’이라는 갈등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기준은 때로 종교일 수도, 인종이나 이념, 소득수준이나 성별일 수도 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와 ‘그들’이 반목하는 세계에 승자는 없다는 것이다.

신경립 국제부 차장 /klsin@sedaily.com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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