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영국 런던의 유럽 지역 대표본부를 자동차 산업 중심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옮기기로 최근 결정한 것은 한국 정보기술(IT) 기업들에 자동차가 얼마나 중요해졌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다. ★본지 7월21일자 1·13면 참조
차량과 IT의 융합을 일찌감치 내다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총수의 지원 덕분에 국내 IT 기업은 통신 모듈에서 반도체에 이르는 차량용 부품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LG그룹은 구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200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특히 친환경 스마트카 부품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고 집중적으로 키웠다. LG전자는 차량용 통신모듈인 텔레매틱스나 오디오·내비게이션 부품을 제너럴모터스(GM)·메르세데스벤츠·폭스바겐 같은 완성차에 두루 공급한다. LG화학은 전기차용 배터리를 전통적 완성차부터 전기차 시장의 강자 테슬라, 창안자동차 같은 중국 메이커까지 납품한다. LG디스플레이는 기존 액정표시장치(LCD)뿐 아니라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이르면 내후년부터 유럽 최고급 차량 제조사에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가 세계 1위 완성차 제조사인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텔레매틱스를 납품하는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이유도 10여년에 걸쳐 자동차 부품 사업을 펼치며 전 세계에서 신뢰를 얻은 덕분이다. 벤츠와의 자율주행차 공동 개발, GM 순수전기차(EV) 쉐보레 볼트의 핵심 부품 공급사 선정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에서도 LG화학이 현대모비스와 HL그린파워를 합작 설립, 현대차에 탑재할 배터리팩을 만들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구 회장이 전장 사업 공조를 위해 의기투합해 세운 회사다.
삼성그룹은 아직 LG만큼 차량용 전장사업에 적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의지만큼은 확고하다. 삼성전자는 전장사업팀을 지난해 말 신설, 본격 시동을 걸었다.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도 차량용 부품을 개발 중이며 공급은 적어도 내년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IHS의 차량용 반도체 전문가인 루카 데 암브로기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삼성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 같은 부품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 계열사 가운데는 삼성SDI가 BMW·폭스바겐·아우디 같은 명품차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며 가장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IT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차세대 아우디 스마트카에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약속하는 등 삼성이 차량용 부품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진단한다. SK그룹도 SK이노베이션이 벤츠·베이징기차에 배터리를 제공하고 SK하이닉스가 지난 5월 차량용 반도체 부품 사업을 위한 오토모티브 태스크포스(TF)를 만들면서 한층 전장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차량용 자율주행장치인 지능형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들어갈 반도체 공급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내 IT 기업들은 점점 포화하는 스마트폰·가전 이후의 먹거리로 전장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가전·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세계 1위를 휩쓴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부품시장의 두터운 진입장벽도 허무는 추세다. LG는 이미 GM의 전략 협력사이자 폭스바겐과 스마트카-스마트홈 협력을 구체화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자동차의 전장화 비율은 35~40%에 달하고 향후 70%까지 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IT 기업들의 선전이 기대된다”며 “특히 LG전자는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업체에 포함될 정도”라고 했다.
물론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업계에서는 국내 IT 기업들이 부품 제조사에만 머물러 시장을 선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자칫하다가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차량용 부품을 진정한 미래 먹거리로 끌어올리려면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자동차의 미래 표준을 제시하고 세계 스마트카 시장을 장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혁·김현진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