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美·中 무역분쟁에 등터지는 한국]철강 등 '전방위 관세 유탄'..기업들, 국가별 생산물량 조정 검토

열연·냉연강판 등도 '관세폭탄' 불보듯

반덤핑제소 갈수록 늘어 대응 서둘러야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틈만 나면 우리나라 기업을 괴롭혀왔다. 세탁기만 해도 이번에는 중국산 수출물량에 시비를 걸었지만 지난 2011년 12월에는 한국산 세탁기를 문제 삼아 상무부에 덤핑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까지 가는 다툼 끝에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9~13%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조치는 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앞서 월풀은 2011년 3월 삼성과 LG의 하단냉동고형 냉장고에 대해서도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달라는 요청을 정부에 하기도 했다.

이는 월풀이 미국 시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는 얘기다. 세탁기만 놓고 봐도 지난해 미국 가정용 세탁기 시장에서 LG와 삼성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11.5%와 11%로 전년보다 0.2~0.3%포인트 상승했다. 여전히 월풀이 22.7%로 1위지만 우리나라 업체가 끊임없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셈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가정용 세탁기 시장은 약 1,600만대 수준으로 7~10년가량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포화 시장”이라며 “이번 건도 한국 업체를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의 연장선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폭탄에 이어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또 다른 케이스라는 것이다.

◇현 수준 관세면 미국 수출 사실상 불가능=올 들어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부딪히는 와중에 미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시장경제지위(MES) 자동 부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은 상태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15년간 MES를 받지 못하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대로라면 올해 말 MES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두고 미국이 중국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속내다.

MES를 받지 못하면 자국 내 원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제3국 기준으로 덤핑방지관세를 받기 때문에 세율이 상당히 높게 나온다. 이번에 삼성과 LG 세탁기에 평균 80% 수준의 반덤핑 관세가 부과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 최종판정까지 여지가 있지만 예비로 산정된 반덤핑 관세율이 너무 높아 이대로 적용된다면 수출을 할 수 없을 수준”이라며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심화하는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반덤핑 제소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6건이었던 미국의 대중국 제소 건수는 올 5월 초 기준으로 9건에 달했다. 지난해 전체 건수를 이미 넘어섰다. 지난해 중국을 상대로 5건의 반덤핑 제소를 했던 EU도 올해는 5월 현재 3건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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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수준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 받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올 1월 중국산 불화탄소 냉매에 상무부가 평균 255.8%의 세율을 매겨야 한다는 예비판정을 내렸다. 지난해에도 멜라민(평균 363.3%), PET 제품(145.9%), 스틸선반(112.7%)의 과세명령 또는 예비판정을 받았다.

◇미중 갈등에 유탄 맞는 우리 제품 증가…각국별 생산물량 조정 검토=문제는 미국의 중국 견제가 계속되면서 우리나라 업체에 불똥이 계속 튈 것이라는 점이다.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해 적지 않은 사안이 바로 풀리기 힘든 것들이다.

분야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올 들어 중국산 냉연강판에 최고 500%대의 반덤핑 관세율을 부과한 미국은 당장 한국산 철강재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강화된 반덤핑 규제를 내놓고 있다.

실제 미국 무역위원회(ITC)는 21일(현지시간)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제품(도금판재류)에 최대 4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각각 47.80%와 8.75%의 관세를 물어야 하게 됐다. 포스코는 미국 수출물량이 적어 직접 조사 대상은 안 됐지만 국가별 물량 가중평균을 적용 받아 31.7%의 반덤핑 관세를 내게 됐다.

상무부 반덤핑 최종판정을 앞둔 냉연·열연강판도 기존 예비판정보다 높은 관세율이 부과될지가 관심사다. 열연강판과 냉연강판은 지난해 기준 대미 수출량이 각각 5억5,000만달러와 1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주요 수출제품이다.

이번 세탁기 건도 최악의 경우 수출선을 조정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판매 세탁기 물량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베트남과 국내·중국에서 미국 수출물량을 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중 간 관계를 감안하면 당분간 두 나라의 무역분쟁은 잦아들기 어려울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베트남을 비롯해 중국 외 다른 나라의 생산물량을 늘리는 등 각국별 생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혜진·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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