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영란법 해설서'나왔지만 모호한 규정 '지뢰밭' 여전

'사회윤리·통념 비춰 용인' 등 추상적 내용 많아 혼란 불가피

"사회상규 애매" 지적에 "판례 쌓여보면 안다" 무책임한 답변



국민권익위원회가 22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해설서’를 펴냈다. 법에 모호한 부분이 많아 자의적인 법 집행을 부추기고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권익위는 200쪽이 넘는 내용에 다양한 실사례를 들어가며 상세히 설명했지만 여전히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아 국민 불안을 씻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전히 애매한 ‘사회상규’ 규정, 큰 논란 일 듯=대표적인 것이 ‘사회상규’ 규정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면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사회상규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말이라 어떤 행위가 이 규정에 해당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다.


권익위는 해설서에서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금품 등은 예외’라고 사회상규의 뜻을 비교적 길게 설명했다. 또 사회상규는 수수의 동기, 목적, 당사자의 관계, 수수금액, 청탁과의 결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 역시 추상적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대학에서 제자 10명이 각자 10만여원씩 모아 스승의 날 교수에게 100만원이 넘는 시계를 선물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시계는 기본적으로는 감사의 의미가 담긴 순수한 선물이지만 교수에게 잘 보여 좋은 성적 등을 받으려는 목적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이 없는 돈을 모아 선생님께 선물한 것을 사회상규에 반하는 행위로 해석하기도 애매하다.


김주영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이런 사례뿐 아니라 수많은 경우에 대해 사회상규 규정의 해석 여부가 갈리는 일들이 생길 것”이라며 “권익위는 향후 판례를 통해 사회상규의 의미가 자연스레 규정될 것이라고 하지만 판결이 나기까지 수사를 받는 사람들의 피해를 생각하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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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자 지시에 따라 청탁했을 경우=회사에서 상급자가 부정한 청탁을 받고 위법한 지시를 했을 때 하급자가 부정청탁임을 알면서 지시에 따르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하급자가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거나 심증이 있었다는 것으로 부정청탁임을 인지했다고 볼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불합리한 지시라도 하급자가 상사의 지시를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을 생각하면 더욱 문제의 소지가 있다. 홍탁균 세종 변호사는 “상급자가 청탁을 받지 않고도 특정 직원을 아끼는 마음에 위법한 지시를 한 경우 지시 자체가 ‘부정청탁’이 될 소지가 있다”며 “이 경우 하급자가 상사의 지시를 이행한 것만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지속적 친분 관계’ 해석 어떻게?=금품수수 처벌 예외 사유 중 하나인 ‘장기적·지속적 친분 관계에 있는 자가 질병·재난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금품을 주는 경우’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설서에는 ‘단순 지연·학연 관계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특별한 친분관계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돼 있는데 그러면 어느 정도가 돼야 특별한 친분관계로 볼지가 애매한 것이다. 민세동 광장 변호사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특별한 친분 관계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일단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애매한 동일인 규정=김영란법에서는 금품수수 금지를 규정하면서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 연 300만원이 넘는 금품을 수수·제공하면 형사처벌을 하도록 했다. 이때 동일인을 어떻게 해석할지도 많은 사람이 헷갈리는 부분이다. 권익위는 건설회사 직원 3명이 회사 업무 관련 각각 30만원, 30만원, 70만원씩 총 130만원을 건축사에게 제공한 경우를 들어 동일인 개념을 설명했다. 직원들이 각각 제공한 금품은 100만원 미만이므로 원칙적으로는 과태료 대상이지만 이들이 상호 의사 연락을 하며 공동으로 제공행위를 했다면 동일인으로 취급해 형사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형사 처벌할 경우 직원들은 최대 징역 3년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연락하고 공동으로 금품을 제공했지만 각각 자신을 위한 목적이었을 경우 동일인으로 봐야 할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제자들이 갹출해 교수에게 선물한 경우’가 그렇다. 제자들은 공동의 목적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물한 것이지만 동일인으로 묶여 형사 처벌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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