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J는 이날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주재로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현재 연간 3조3,000억엔 규모인 ETF 매입 규모를 6조엔으로 늘리기로 했다. 금융기관을 통해 일본 기업들에 대출 지원하는 달러화 공급액도 종전의 120억달러에서 240억달러로 확대한다. 단 현재 -0.1%인 기준금리와 연간 80조엔 규모인 자산매입 규모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BOJ의 이날 결정은 다음달 2일로 예정된 대규모 경제대책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앞두고 나온 것이다. 아베 총리는 꺼져가는 일본 경제의 성장 동력을 살리기 위해 13조엔의 재정지출을 포함한 28조엔 규모의 경제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BOJ에 추가 금융완화를 통한 지원 사격 압력을 넣어 왔다. 이날 발표된 6월 근원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동월비 -0.5%에 그치고 실질소비지출도 2.2% 감소하는 등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본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재정과 금융수단을 총동원하는 ‘아베노믹스’의 속도를 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올 회계연도 CPI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의 0.5%에서 0.1%로 하향조정한 BOJ는 회의 후 발표문에서 “완화적 금융환경을 정비함으로써 정부의 대책과 (경기 부양을 위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며 BOJ가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실망이었다. 한때 중앙은행이 정부에 직접 돈을 대는 일명 ‘헬리콥터 머니’까지 예상됐지만 금리나 자산매입 규모는 건드리지 않은 채 ETF 매입만 늘리겠다는 구로다 총재의 결정이 기대에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BOJ 회의 직전 달러당 105엔대이던 일본 엔화 가치는 BOJ 발표 직후 장중 달러당 102.83엔까지 급등했고, 도쿄 증시의 닛케이지수도 한때 300엔 이상 급락하는 등 요동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번 추가 완화책이 BOJ의 정책 수단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BOJ가 일본 국채의 3분의 1 이상을 흡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자산매입의 여지가 낮은데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은행권이나 가계에 초래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제한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로다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융완화 정책이 한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시장의 우려를 일축했다. 하지만 미즈호은행의 가라카마 다이스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BOJ 결정은 사실상 현상유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추가 완화 수단이 고갈되고 있다는 인상을 시장에 심어 줬다”며 “앞으로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을 넘어 두 자리 수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BOJ 금융정책 뿐 아니라 재원에 한계가 있는 정부의 경제대책 역시 ‘속 빈 강정’이 될 것이란 우려 속에 아베노믹스 자체가 벽에 부딪쳤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앞서 아베 총리가 발표한 총 28조 엔의 경제대책 가운데 상당액은 수년에 걸쳐 집행되는 대출금이며, 새로 투입되는 재정은 7조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BOJ 회의를 앞두고도 해외 투자자들이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입론 주식을 내다 판 것은 이들이 일본의 (재정·금융) 정책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