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해외 탈세 막는 협정 외면하는 국회…미국발 세금폭탄 우려

美, 9월까지 비준 안 하면 금융 소득에 30% 추가 과세

국세청 역외탈세 추징액만 연 1조3,000억원에 달해

비준 안 되면 미국 내 수입에 수천억 원 과세당해



국회가 해외에 재산을 도피하는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 미국과 맺은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ATCA)’의 비준을 미루면서 국내 금융사들이 세금폭탄을 맞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대 국회는 이 협정을 비준하지 않은 채 떠났고, 20대 국회도 비준 데드라인(마감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처리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비준이 늦어지면 내년 1월 1일부터 미국 국세청은 우리 금융사를 대상으로 최대 수천억 원대의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게 된다.

30일 국회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국제 납세의무 준수 촉진을 위한 협정 비준동의안’은 지난 6월 제출된 뒤 아진 본회의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FATCA로 불리는 이 협정은 우리와 미국이 매년 9월 서로 자국민의 계좌와 이익 등 금융 정보를 자동으로 교환해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 마련됐다. 협정이 비준되면 한국은 미국 내 은행에 연간 이자 10달러(약 1만1,000원)를 초과하는 예금계좌를 개설한 우리 국민들의 금융정보를 매년 9월 통보받게 된다. 이자율을 1%로 가정하면 1,000달러(110만원) 이상 들어 있는 예금계좌가 대상이다. 반대로 미국도 한국에 개설된 미국인의 계좌정보(5만달러 이상)를 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이 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도 올해 9월까지 미국 국세청(IRS)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만약 제출이 늦어지면 미국 정부는 내국세법(IRC)에 따라 내년부터 국내 금융사가 미국에서 얻은 이자와 배당 등 원천소득에 30%의 세금을 부과한다. 현재 국내 금융사가 미국에 투자해 얻은 수익에 대해 내는 평균 12.3%(이자소득 12%, 법인 배당 10%, 일반 배당 15%)의 두 배가 넘는(17.7%포인트) 세금 폭탄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한미가 이 협정을 맺은 이유는 역외탈세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역외소득·재산자진신고기획단에 “해외에 재산이 있다”고 스스로 신고한 건수만 봐도 역외탈세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숨겼던 역외소득과 재산을 신고하면 과태료와 형사처분을 감경해주는 제도를 운영하자 마지막 달인 3월에 526건의 신고가 몰렸다. 전체 신고건수는 642건, 5,129억원 규모였다. 이를 통해 총 1,538억원의 세금이 걷혔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추징액은 2012년 8,258억원에서 2013년 1조789억원, 2014년 1조2,179억원, 지난해에는 1조2,861억원으로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국세청은 지난달 전 세계 역외탈세 혐의자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 관련 한국인 4명을 비롯해 36명에 대한 세무조사도 돌입했다.



하지만 국회는 역외탈세 방지에 열을 올리는 정부에 비해 냉담한 반응이다. 우선 역외탈세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가 큰 FATCA 비준에 관심이 없다. 19대 국회는 이 법을 지난해 10월 한 차례 논의하고 덮은 채 임기를 마쳤고 올해 새로 출범한 20대 국회도 비준을 미루며 늑장을 부리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전체적인 입법 취지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역외 금융정보가 자동으로 수집되는 데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비준이 늦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기한 내 비준이 안 되면 국내 금융사들은 얼마나 많은 세금폭탄을 맞을까. 서울경제신문이 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추가 세금 부담액을 분석해본 결과 국내 금융사들의 추가 세금 부담액이 최대 6,650억원에 이를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해외에 투자된 펀드 총액은 61조원, 이 가운데 북미에 투자된 금액만 24조4,000억원(40%) 수준이다. 지난 3년의 평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배당수익률은 15.4%. 이를 적용하면 미국 투자수익은 3조7,500억원가량이다. 현행 기준(12.3%)을 적용하면 4,620억원가량만 세금으로 물게 되는데 국회가 FATCA를 비준하지 않으면 내년부터 30%가 적용돼 약 1조1,270억원을 내야 한다. 국회가 역외탈세를 막기는커녕 우리 금융사들이 안 내도 될 최대 6,650억원(17.7%)의 폭탄을 안긴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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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협정을 비준하고 미국 국세청에 국내에 개설된 미국인의 계좌를 넘기는 시한은 9월 말까지다. 국내 금융사들과 계좌를 파악하는 시한이 한 달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협정은 8월 내 비준돼야 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인 미국이 우리 금융사에 전면적으로 세금 폭탄을 매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비준이 늦어지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정부의 역외탈세 방지에 대한 의지가 신뢰를 잃게 된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 선진국들을 비롯해 50개가 넘는 국가가 미국과 동일한 협정을 체결한 후 발효를 마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비준이 늦어지면 미국 정부에 비준 통과 시한을 과세 시점인 내년 1월 1일까지 늦춰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면서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국 정부에 달려있다”고 전했다./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용어설명

FATCA=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협정이 발효되면 한국은 국내에 개설된 미국인 계좌, 미국은 한국인 계좌 정보를 매년 9월 자동으로 교환하게 된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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