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현지시간) 독일의 경제 수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발도르프의 SAP 본사. 인구가 채 만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의 주택가 건너편에 있는 이곳은 마치 대학교 캠퍼스를 연상케 했다. 한적한 분위기와 달리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SAP는 독일 대표답게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총 21개 동에 달하는 각각의 연구동에서는 고객사에 제공하는 제품 개발과 업그레이드에 여념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빅데이터 활용이 화두다. 자원관리부터 생산공정, 판매 및 재고까지 각 기업의 비즈니스를 통합적·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개발업체에서 맞춤형 빅데이터 분석 및 관리 전문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헤드쿼터 건물 1층에 위치한 빅데이터관에서는 SAP 주력 사업의 변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빅데이터관 끝에는 현재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치를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다. 최근 데이터를 토대로 증가세를 반영해 SAP가 추산한 것으로 취재진이 방문할 당시 35억3,628만여명이 인터넷에 접속해 있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검색 이력 등이 한데 모여 빅데이터가 된다는 얘기다.
게오르그 쿠베(사진) SAP 선임 부사장은 “공장 자동화를 포함해 빅데이터를 이용한 4차 산업혁명형 서비스는 4년 전부터 개발에 돌입해 SAP의 주력 사업군으로 키우고 있다”며 “고객사가 보유한 모든 데이터가 SAP의 클라우드로 모이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사에 생산부터 판매까지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AP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빅데이터를 가상의 인터넷상 공간인 클라우드에 한데 모아 이를 기반으로 고객사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확대해왔다. 이는 비즈니스 솔루션과 관련한 소프트웨어 판매만으로는 산업 변화의 물결을 주도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첫 단계는 과감한 투자. 2014년에는 미국의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인 ‘컨커테크놀로지’를 84억달러에 인수했다. 2015년에는 클라우드 기반의 차세대 비즈니스 지원 프로그램인 ‘SAP S/4HANA’를 출시했다.
지난해 말 기준 SAP의 전체 매출액 중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1% 수준이다. 그러나 올 들어 매 분기 30%(전년 동기 대비)가 넘는 매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어 머지않아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가 SAP의 주력 사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쿠베 부사장은 “지멘스를 포함해 SAP의 모든 고객사가 보유한 데이터는 클라우드를 통해 한곳에 모이고 SAP는 이를 기반으로 고객사가 관련 사업에서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중요한 점은 클라우드 내의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은 전적으로 고객사가 가지고 있다. 데이터를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이 시장에서 SAP를 신뢰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SAP의 솔루션을 사용하는 곳은 특정 분야로 규정할 수 없다. 지난해 포춘지가 선정한 글로벌 상위 2,000개 개업의 87%가 SAP의 고객이다. 기업 외의 고객도 다양하다. NBA 사무국이 SAP 시스템을 이용해 경기기록 등의 데이터 등을 관객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고 캐나다 몬트리올의 대중교통국은 SAP의 도움으로 교통 정보 애플리케이션(APP)을 개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상청 역시 2013년부터 SAP의 클라우딩 시스템을 바탕으로 빅데이터에 기반해 일기예보를 하고 분당서울대병원은 SAP의 HANA를 도입해 통상 한 달 이상 걸리던 분기별 데이터 분석을 2초로 단축시켰다.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 SAP 곳곳에 마련된 구내식당에는 직원들의 토론 소리로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SAP의 점심시간은 2시간에 달한다. 서로 다른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 자연스러운 시간이다. ‘Run Simple(비지니스의 단순화)’이라는 슬로건으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SAP. 취재진을 안내한 직원 소피는 “구내식당이 조용한 날은 없다”고 했다. /발도르프=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