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슈리브 선장의 창조 경제



앤드류 잭슨과 애이브러험 링컨, 톰 소여. 세 사람을 한 데 묶는 공통점이 서민 출신 말고도 또 있다. 무엇일까. 똑 같이 미국 대통령(7대·16대)을 지낸 잭슨과 링컨은 서민 출신이지만 유색인종에 대한 태도는 정반대였다. 링컨은 노예해방의 주역인 반면 잭슨은 인디언을 잔혹하게 내몰았다.

문제의 답은 소설 속의 주인공인 톰 소여가 갖고 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에서 성장기 소년들이 뛰노는 무대인 ‘미시시피강’이 바로 답이다. 자수성가한 변호사이며 민병대 출신인 잭슨은 미시시피강 하류인 뉴올리언즈에서 1815년 1월 영국군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20대 초반의 링컨은 생전 처음 돈벌이였던 미시시피 수로 여행의 종점인 뉴올리언즈에서 처음 흑인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한 사람 더 있다. 헨리 슈리브(Henry Shreve). 미국 건국 초의 수운업자인 그가 없었다면 세 사람의 공통점을 묻는 문제는 성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내륙 수운을 개척하지 않았다면 마크 트웨인이 선원 생활을 경험하지도,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하는 일련의 모험성장소설도 태동하지 않았을 터이니까. 평생을 강에서 보낸 슈리브는 경제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미국 건국초 운수산업의 독점체제를 깨뜨리고 철도 등장 전까지 물류혁신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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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의 영웅이면서도 가난했던 가문에서 1785년 10월21일 태어난 그는 부친을 잃은 14세부터 강에서 뱃일을 배웠다. 타고난 근면함으로 얼마 안 지나 자기 배를 마련한 뒤부터 미국 중서부의 강줄기를 샅샅이 훑고 다닌 그의 명성이 알려진 것은 24세 때인 1814년. 증기선 엔터프라이즈에 탄약과 화약 같은 군수품을 싣고 기적적으로 폭포와 급류를 헤쳐 앤드루 잭슨이 지휘하는 미군에 인도해 미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승리 가운데 하나인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숨은 공로를 세웠다.

미국 중서부의 내륙수로를 개발하며 무역업자 겸 해운업자로 일하던 그는 1817년 증기선을 발명한 풀턴의 후손이 가진 미시시피강 하류의 독점운항권에 대한 소송을 제기, 승리를 따냈다. 슈리브가 이뤄낸 독점조항 붕괴는 수운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기업 설립과 자유경쟁 붐을 일으켰다. 선박 건조에도 일가견이 있던 슈리브는 모래톱과 진흙 펄이 많은 강을 오가는 데 적합한 선형의 선박 설계를 주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크 트웨인 등의 소설에 나오는 목가적 외륜 증기선이 바로 슈리브의 구상대로 건조된 배들이다.

슈리브는 미시시피뿐 아니라 미국 곳곳의 강도 뚫었다. 태고부터 수 만년 동안 강바닥에 침식된 나무줄기와 뿌리를 증기선 두 척과 도르레, 대형 삽으로 제거하는 기구를 발명, 강들을 말끔히 청소했다. 루이지애나가 무역항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그가 257㎞에 걸쳐 수상에서는 큰 뗏목(great raft)으로 보이지만 강물 밑으로는 나무들로 얽히고 설킨 거대한 장애물을 치운 다음부터다. 슈리브 선장의 창의력과 역동성은 루이지애나주의 공업도시 슈리브포트를 통해 영원히 살아 있다. 슈리브는 영역이 넓어진 신생 미국의 지역적 동질화와 고도 성장을 이끌었다. 오늘날에도 낭만이 흐르는 미시시피강의 수면 밑에서 진행된 19세기 초반 창조경제가 철도 등장 이전까지 미국의 물류 인프라 혁신을 주도했던 셈이다./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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