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맞아 지난주 제주도 여행을 떠난 김모씨는 이동수단으로 전기자동차를 택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인프라가 잘 갖춰진 제주에서 전기차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충전을 위해 급속 충전기를 찾아다닌 그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충전기마다 전기요금을 결제할 수 있는 카드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통일되지 않은 전기차 충전 결제 방식으로 소비자의 혼란이 가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한 주체마다 자신들이 지정한 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해 정작 이용할 수 있는 충전기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요금 결제방식을 통일하지 않으면 전기차 보급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가 설치한 전기차 급속충전기에서는 현재 신한·BC·KB 등 3사 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다. 해당 카드사의 후불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카드여야만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나마 환경부 충전기는 사용하기 편한 축에 속한다.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의 경우는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 절차를 거친 후 정액제 카드를 발급받도록 했다. 나머지 사업자들이 설치한 충전기도 각자 자사 카드를 구매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정부가 전기차 인프라 확충을 위해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늘리겠다고 공언했지만 결제 방식이 통합되지 않으면 소비자 불편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실제 제주도의 경우 환경부 49개,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61개, 제주전기차서비스 69개, 실증사업으로 참여한 3개 업체가 69개의 충전기를 설치한 상황이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급속충전기는 물론 완속충전기도 각기 다른 업체들이 일정 거리를 두고 충전소를 마련해놓았다. 제주도의 경우 전체 전기차 충전기 수만 보면 200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려면 총 6개의 사업자가 원하는 카드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이트마다 회원가입을 해야 해 번거롭다. 만약 BC카드만 가진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충전기는 49개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이라 최근 제주도에서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 20대를 구매해 렌터카로 활용하고 있는 한 렌터카 업체는 차량에 환경부와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충전기에서 이용 가능한 카드 2개를 비치해놓았다.
환경부도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충전기 사업자, 카드사 등과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 통합시점이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 관계자는 “문제점이 있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과정이 순탄치 않다”며 “최종적으로 통합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 2,100억원을 투자해 서울·제주·고속도로 등에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대량 구축한다. 친환경차 시대를 앞당기려는 조치다. 앞서 정부는 미세먼지저감대책에서 오는 2020년까지 신차 판매의 30%(총 150만대)를 친환경차로 대체하고 전기차 충전소를 3,0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 194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 최소 1개 이상 충전기를 설치하겠다는 목표도 내놓은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충전시설 등 하드웨어 못지않게 결제 방식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중요한 인프라”라며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결제 방식을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