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사기꾼 폰지의 유령



“단돈 6달러만 투자하면 3개월 뒤 80만 달러를 벌 수 있답니다.” 외환위기(IMF 사태) 직후 천리안·하이텔 등 PC 통신과 인터넷에 유행처럼 퍼졌던 문구다. 행운의 편지와 피라미드식 다단계 판매를 합친 신종 사기였다.* 실제로 돈을 번 사람은 없었다. 미국에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반짝하고 사라진 ‘빠르게 돈 벌기(Make Money Fast)’란 사기편지가 경제위기로 어려운 한국인들을 파고 들었던 것이다.

피라미드식 다단계 사기 판매의 원조는 찰스 폰지(Charles Ponzi 1882~1949). 이탈리아 태생으로 21세에 미국 땅을 밟은 이민 1세대였다. 폰지는 훗날 인터뷰에서 ‘미국 도착 당시 2달러 50센트 밖에 없었지만 백만 달러가 넘는 희망이 있었다. 평생 희망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으나 조금은 거짓이 섞여 있었다. 돈이 없었던 이유가 미국행 여객선 안에서 선상 도박으로 날렸던 탓이었으니까.


미국에 이민 와서도 도벽과 낭비벽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폰지는 늘 말썽을 일으켰다. 식당과 은행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밀수단에 가입하고 은행장 가계수표를 훔쳐 써 1910년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도 그는 하나도 안 변했다. 고향의 친척들에게는 ‘교도소장의 특별보좌역으로 채용됐다’는 거짓 편지를 보냈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 밀수로 재수감된 폰지는 감옥에서 특별한 동료 두 명을 만났다.

한 명은 마피아 출신 조폭, 다른 하나는 동부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어거스터스 하인즈와 함께 구리 투기와 가격 조작을 일삼은 끝에 1907년 미국 공황을 유발한 찰스 모스였다. 각각 사기와 폭력, 돈의 영역에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세 사람은 교도소에서 각별한 친분을 쌓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꾀병으로 병보석을 얻어 출감한 모스에게서 폰지는 교훈을 얻었다. ‘굴리는 돈이 크면 클수록, 사고 금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처벌받지 않는다’는 교훈을.**

복역 후 이런 저런 사업을 벌였으나 모두 망했던 폰지는 1919년부터 돈방석에 앉았다. 비법은 환차익. 호황을 구가한 미국 달러화의 강세로 환율이 급변했지만 각국 우표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환율대로 교환되는 점을 교묘히 이용, 수익률 400%를 올렸다. 자신이 붙은 폰지는 ‘돈을 45일간 맡기면 50%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너나없이 달라붙어 1920년 2월 5,000달러였던 모집액이 6월에는 4억5,000만달러로 불어났다.


요즘 가치로 299억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모았으나 문제는 공급. 최소한 1억8,000만장이 필요했던 우표 공급이 3만장에도 못 미쳤다.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알고도 폰지는 투자자에게 신규 투자자의 돈을 내주며 자금을 계속 끌어당겼다. ‘폴에게 지급하기 위해 피터에게 사기치는 수법(robbing Peter to pay Paul)’, 즉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은 오래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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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행각은 1920년8월2일 멈췄다. 신문 보도로 들통 났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느낀 폰지 측근이 제보했다고 전해진다. 최종 집계된 피해자는 1만7,000여명. 피해액은 10억 달러에 달했지만 폰지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교도소로 이송 도중에 도주, 부동산 투기가 한창이던 플로리다로 숨어들어 부동산 피라미드 사기를 쳤다. 플로리다에서 꼬리가 잡히자 텍사스에서 변장한 채 부동산 사기극을 펼쳤다.

체포됐을 때는 정부와 흥정을 벌였다. 자신이 해외에 빼돌린 돈을 미국 정부에 돌려주겠다며 형량을 협상한 폰지는 1934년 영구 추방을 조건으로 풀려났다. 말년에 이탈리아와 브라질을 전전하다 1948년 빈곤 속에서 죽을 때까지 자잘한 사기행각을 끝없이 펼쳤다고 한다. 폰지의 사기 행각이 남의 일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느 누구도, 어떤 시장도 폰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MIT대 교수(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주식시장은 때때로 폰지 사기처럼 거대한 사기극에 빠진다’라고 경고한다. 결국은 수건 돌리기 게임처럼 끝이 뻔한데 계속 올라가는 주택 가격부터 특정주의 움직임까지 폰지 수법이 여전히 횡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빠르게 돈 벌고 싶은 개개인의 욕심’이라는 자양분 공급이 끊이지 않는 한 사기꾼 폰지의 유령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배회할 것이다. 어제와 오늘처럼, 내일도.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사기의 수법은 이렇다. 먼저 전자 우편이 날아온다. “아래의 리스트에 있는 6명에게 각각 1달러를 편지봉투에 넣고 ‘저를 당신의 메일링리스트에 올려 주세요’라고 쓴 다음 당신의 성함과 집 주소를 적어 보내십시오”라는 안내가 첫 문구. 이어서 전자우편을 전파하고 돈을 버는 방법을 안내한다. 즉 이들 6명의 주소 중 1번의 이름과 주소를 지우고 2번부터 5번까지의 명단과 주소를 1∼5번으로 옮긴 다음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6번에 적어 각각 1달러씩 넣은 편지를 보내라는 것. 마지막으로 이런 내용을 담은 전자우편을 PC통신 이용자 1,500명에게 무작위로 보내면 끝이다. 적어도 1% 정도가 관심을 보인다고 가정할 때 3개월 후에는 80만 달러를 벌 수 있다고 현혹했지만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번 사람은 없었다. 신종사기였다.

** 1920년대까지 미국은 정글 자본주의와 다름없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판쳤다. 오죽하면 작가 마크 트웨인이 시대를 비꼬는 풍자소설에 ‘도금시대(鍍金時代·The Gilded Age-A Tale of Today)란 제목을 붙였을까. 황금만능주의가 판치던 미국 경제에 반독점 규제가 처음 행해진 시기는 1910년대 초반, 주식시장에 각종 제재가 내려진 시기는 1929년 주가 대폭락으로 인한 세계 대공황 이후다. 정글 자본주의에 눈감는 방임국가, 시장 만능주의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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