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기복신앙



매년 대학 입시철이 되면 전국 대부분 절에는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의 이른바 ‘입시 기도’가 시작된다. 입시 기도는 효과가 있을까. 입학 정원이 1명인 A대학 B학과에 2명이 응시했다고 치자. 공부만 하고 기도하지 않은 학생과 공부하지 않고 기도만 한 학생 중에서 합격하는 학생은 당연히 전자다. 공부하지 않고 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시라도 기도가 합격을 좌우하는 것은 공부한 학생에게는 불의한 일이다. 신은 불의한 일을 하지 않는다. 이치가 이렇듯 명백한데도 입시 기도가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입시 기도뿐이 아니다. 절에 가면 온갖 기도를 다 할 수 있다. 취직 기도, 승진 기도, 건강 기도, 개업 기도, 사업 기도 등 각종 소원성취 기도가 널려 있다. 신도는 기도 동참금을 절에 내고 절은 신도가 기도를 잘할 수 있게 돕는다. 입시 기도와 마찬가지로 이런 기도는 효과가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된다. 효과가 있는 순간 공정 경쟁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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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도를 사람들은 흔히 기복신앙이라고 부른다. 기복신앙이란 종교의 교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이득을 위해 절대자에게 나의 욕심을 채울 그 뭔가를 요구하는 행위를 뜻한다. 지금 절·교회·성당·모스크 등 세계 곳곳의 종교시설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기도 가운데 기복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기도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버드대 대학원을 다니다 출가한 푸른 눈의 현각스님이 최근 한국의 불교를 기복신앙으로 비판한 후 이에 대한 반박과 옹호 의견이 잇따르며 파문이 커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각스님을 비판하는 쪽에서도 “한국인 승려들은 대부분 기복으로 돈을 ‘밝혀’ 100만원 남짓 받으며 살아가는 정도”라며 기복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대로라면 기복이 없으면 종교도 없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종교가 이렇게 허약한 것인지 기복이 저렇게 끈질긴 것인지 헷갈린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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