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3·5·10만원'에 숨은 의미

노희영 정치부 차장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에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그중에서도 ‘3-5-10만원 규정’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3-5-10만원 규정은 김영란법상 금품수수의 예외로 규정된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선물·경조사비’의 금액 제한을 뜻한다. 김영란법의 직접 적용 대상인 공직자 등(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교사·교수, 언론인)이 이 금액 이상을 대접 받으면 범죄자가 된다.

김영란법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3-5-10만원 규정을 정한 근거는 국민 여론조사 결과다. 이에 대해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공직자 등은 “일반 국민들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상향 조정 필요성을 제기한다.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산림청·중소기업청 등 일부 정부부처에서도 농축수산업계·화훼농가 등의 피해를 우려하며 금액 상향을 주장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내수 경기가 위축되면서 11조6,0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이에 ‘5-10-10’ ‘5-10-20’ 등 갖가지 상향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하지만 김영란법과 관련된 관심이 ‘3-5-10만원’이라는 숫자에만 쏠리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왜 이런 금액이 적정하다고 보는지는 간과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6월 청년실업률은 10.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온 지 오래다. 간신히 직장을 구하고 결혼과 출산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육아, 내 집 마련, 노후 대비 등 산 넘어 산이다. 3포에 더해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건강, 외모까지 포기한 ‘9포 세대’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지옥(hell)+조선(朝鮮))’이라 부르며 탈출 방법을 모색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한 끼에 3만원짜리 식사도, 5만원어치의 선물도, 10만원의 경조사비도 부담스러울 터다.

국민들의 눈높이가 3-5-10만원에 고정된 것이 우리 경제의 현주소다. 2003년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 기준인 음식물 3만원 그대로다. 지난 13년간 소비자 물가가 41%나 올랐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된 데는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공직자들의 책임이 크다.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3-5-10만원이 지나치게 낮다고 주장한들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법제처는 2일 농식품부 등의 요청대로 김영란법 시행령안 논의를 위한 정부입법정책협의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경제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향후 협의과정에서 3-5-10만원 규정이 상향될 여지가 생겼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공직자들은 국민들이 3-5-10만원 규정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nevermind@sedaily.com

노희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태그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