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4차 산업혁명 성패 빅데이터에 달렸다] 연 수백만건 실험이 빅데이터로…머크, 액정분야 특허만 3,000건

■머크의 350년 장수 비결

사업부간 영역 허문 연구개발

융합과 시너지로 경쟁력 높여

생명과학·소재사업 등 거느린

연매출 16조 글로벌기업 성장

M&A로 원천기술·데이터 흡수

10년간 47조 넘게 쏟아부어

머크 혁신센터 2층에 설치된 스마트 윈도는 설정 값에 따라 빛 투과율을 스스로 조절한다. 머크가 개발한 액정으로 만든 스마트 윈도는 다음달 중 상용화될 예정이다.  /사진=조민규기자머크 혁신센터 2층에 설치된 스마트 윈도는 설정 값에 따라 빛 투과율을 스스로 조절한다. 머크가 개발한 액정으로 만든 스마트 윈도는 다음달 중 상용화될 예정이다. /사진=조민규기자


지난달 25일 독일 다름슈타트에 위치한 머크 본사 액정 연구동 4층. 30여명의 연구원들이 의자도 없이 선 채 각종 원재료로 기능성 액정을 개발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했다. 기껏해야 액정의 원료는 100여가지. 연구동을 책임지고 있는 마티아스 브레머 박사는 그러나 “원료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액정의 종류나 질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며 “1년에 수백만건의 실험이 이뤄지는데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모든 결과는 기록돼 머크의 자산인 빅데이터가 된다”고 말했다.

머크는 오는 2018년 창립 350주년을 맞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러나 기자가 이날 본 머크의 모습은 마치 신생 스타트업을 보는 듯 역동적이었다. 머크는 1668년 다름슈타트의 ‘천사약국’을 모태로 출발했다. 지금은 생명과학과 헬스케어, 첨단소재의 3대 사업부를 거느린 글로벌 제약·화학 기업으로 연 매출(2015년 기준) 128억유로(16조원) 규모에 이른다.


한눈에 보기에도 서로 성격이 다른 사업군을 한 회사에서 영위하며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비법은 무수한 연구결과(빅데이터)를 활용한 끊임 없는 혁신에 있었다. 창업주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부터 현재 13대손까지 머크 일가가 가족위원회를 구성해 회사 주식의 70%를 소유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혁신을 위한 투자와 연구개발(R&D)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독일 다름슈타트에 위치한 머크 본사 혁신센터 건물. 빅데이터로 혁신을 거듭한 머크는 오는 2018년 창립 350주년을 맞는다. /사진=조민규기자독일 다름슈타트에 위치한 머크 본사 혁신센터 건물. 빅데이터로 혁신을 거듭한 머크는 오는 2018년 창립 350주년을 맞는다. /사진=조민규기자


전문 의약품과 액정 원료를 연구개발하고 생산하는 회사답게 머크는 데이터를 다루는 노하우가 남다르다. 숱한 연구개발 결과를 빅데이터로 가공하고 활용한 결과 신소재사업부가 액정 분야에서만 보유한 특허가 3,000건이 넘는다.


브레머 박사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개발되면서 액정을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두 제품은 대체재 관계가 아니다”라며 “우리가 개발한 액정을 토대로 고객사가 다음달 중 ‘스마트 윈도(사진)’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등 꾸준히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스마트 윈도는 빛의 양에 따라 투과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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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인수합병(M&A)도 머크의 혁신수단 중 하나다. 머크의 인수합병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아니다. 기준은 원천 기술을 보유했는지 여부다. M&A한 기업의 기술력과 데이터는 물론 모든 인력까지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지난 2007년 유전자 조합 전문 회사인 세로노를 인수해 헬스케어 사업부로 통합했고 지난해 시약연구 분야의 글로벌 2위 업체인 시그마알드리치를 사들여 생명과학 사업부를 키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10년 동안 머크가 원천기술 보유기업을 인수하는 데 쏟아 부은 돈은 약 47조원에 달한다.

이렇게 축적된 빅데이터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도 활용된다. 머크는 1990년대 초반부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B2B 전자상거래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대학교나 기업 연구실에서 “특정 분야에 대한 실험을 하고 싶다”고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에 올리면 머크는 30만개가 넘는 제품을 바탕으로 그동안의 데이터에 근거해 최적의 실험 환경을 조성해 준다. 머크의 맞춤형 서비스는 온라인에서 파스타와 소스를 주문하면 이탈리아 요리를 더 잘 만드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것과 흡사하다.

각 사업부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도 머크만의 경쟁력이다. 머크는 특수 렌즈를 이용한 인공 수정체로 백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의 시력을 높여 주는 ‘리크리아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능성 소재 사업부에서 연구한 소재를 바탕으로 헬스케어 사업부에서 눈에 넣을 수 있는 렌즈를 생산한다. 서로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업부 간의 융합인 셈이다. 또 디지털 응용 센서 프로젝트에는 생명과학, 헬스케어, 기능성 소재 사업부 소속 직원들이 함께 팀을 이뤄 기압과 습도, 온도, 위치 정보를 시약병에 부착된 통합 센서가 측정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로엘 불투이스 머크벤처스 대표는 “융합이 핵심인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사업 영역 간 중첩되는 부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올해부터는 기존 사업 영역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한 채 블라인드 형식으로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름슈타트=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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