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산업은행 혁신위, '진짜 혁신' 가능한가

검찰 관계자들이 2일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후 물품을 가지고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검찰 관계자들이 2일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후 물품을 가지고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우조선 해양 부실로 인한 ‘서별관 회의’ 파문과 홍기택 전 회장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사퇴 논란, 그리고 강만수 전 회장의 구속 수사에 이르기까지 산업은행 사태는 복마전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조직 쇄신이 절실했던 만큼 지난 4일 산은이 발표한 혁신위원회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막상 혁신위원회의 뚜껑을 열어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본격 가동하기 전부터 김 새는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 7명 중 4명이 모두 대학교수 출신이라는 점부터 문제로 지적된다. 나머지 위원 3명은 은행 출신 임직원으로 구성됐다.


사실 ‘혁신’을 위한 기구는 이미 모든 금융사가 갖추고 있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역할은 철저한 모니터링이다. 주주들의 투자 원칙에 맞게 회사를 잘 경영하고 있는지, 최고경영자(CEO)가 개인 욕심 때문에 전략상 오류를 촉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하는 것이다.

혁신의 출발점은 ‘자기 객관화’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무엇인지 냉정하고 파악하고, 평가하며, 그 결과에 맞게 변해야 한다. 사외 이사는 남의 집 식구에게 우리 집 살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솔직히 이야기해 달라고 위촉한 자리다. 이들이 제대로 일을 하고, CEO와 기업 조직이 건강하게 돌아가기만 하면 혁신은 차질 없이 수행될 것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교수 사랑’은 유별날 정도다. 지난 3월 임명된 산업은행 사외이사 가운데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모두 대학교수 출신이었다. 이들은 공공기관 보수 규정에 따라 연간 3,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보통 외부 자문이나 사외 이사 활동을 활발히 하는 교수들의 연차가 15~20년 정도 시니어급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엄청난 ‘부수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은 돈을 받은 만큼 엄중한 책임감을 갖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웬걸, 이들의 출석률이 4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의 중요한 투자와 관련된 의견을 내는 리스크관리위원회에 출석한 적이 없는 사외이사가 있는가 하면, ‘다른 일정’을 이유로 회의에 나오지 않는 이사도 꽤 있다고 한다. 외부인 자격으로 기업 경영을 모니터링하는 사외이사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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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는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 자문을 맡아 경영진이 제대로 판단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돈 준 만큼 사람들을 쓰는 게 기업의 속성인데, 유독 산업은행만큼은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유도한다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적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기업들을 살펴보면 유명 경영학 교수들을 사외 이사로 모시려고 애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부분 이사들은 동종업계나 타 업계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시니어급 경영자다. 그 흔한 쿠션용 관피아 이사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의 다국적 금융서비스기업인 웰스파고 이사회를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 이사 15명 가운데 교수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다양한 산업군의 전현직 CEO들이 매의 눈으로 이사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평균적인 수치를 비교해도 산업은행의 경우는 이례적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2010년 20개 글로벌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금융인 비중은 46%에 불과했다.

이는 우리나라 평균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2014년 9월 금융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32명 중 50%가 교수 및 연구직이었다. 금융인은 12.5%에 불과했다. 범위를 넓혀 봐도 결과는 비슷하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5년 금융회사 95개의 사외이사 406명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금융지주그룹의 사외이사 180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직업군이 교수(51명)임에도 불구하고 비중만 놓고 보면 28.3%로 산은에 한참 못 미쳤다.

물론 교수 출신 사외이사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꼼꼼히 기업의 재무 구조를 들여다보고 쓴 소리를 던지는 사외이사가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이번 산은의 혁신위원회는 단순히 일상적인 경영적 판단을 하는 곳이 아니다. 위기에 봉착한 산은이 스스로 개혁을 약속하고 뼛속부터 변화하기 위해 꾸린 조직이다. 기존 체제로는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혁신위 출범의 직접적인 동기라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이렇게 산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시장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혁신’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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