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윤지영(43)씨는 최근 아들 방에 들어갔다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학생인 아들이 주류회사 홈페이지에서 주류 신제품 소개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홈페이지는 ‘깊고 풍부한 맛’, ‘톡톡 튀는 과일향’ 등 한눈에 봐도 자극적인 문구로 가득했고 성인인증을 위한 생년월일도 누구나 임의로 입력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다. 윤씨는 “저녁에 주류 TV광고가 나오는 것도 걱정인데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에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소년 음주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한 주류업체 홈페이지의 성인인증제가 유명무실하다. 만 19세 미만 청소년의 접속을 차단하기 위한 생년월일 입력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일부 주류업체는 이마저도 운영하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9일 서울경제신문이 주요 주류업체 홈페이지를 조사한 결과 대다수 기업들이 생년월일 입력을 통한 성인인증제만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 19세 이상이 되는 숫자만 임의로 입력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술 신제품 소개와 광고 영상, 제조 공정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업체들은 이마저도 지키지 않고 있다. 롯데주류와 화요는 생년월일 대신 ‘예’, ‘아니오’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청소년의 접근을 사실상 용인하고 있었고 국순당(043650)과 안동소주 등은 청소년의 접속을 막는 장치가 전무한 실정이다.
주류업체 홈페이지의 성인인증제는 2012년 2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당시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하면서 주류와 담배 등을 청소년 유해물질로 규정하고 제조사에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주류업계는 정부 요청을 받아들여 홈페이지에 생년월일 입력을 통한 성인인증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 권고사항인 탓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권고와 업계 자율협약에 따라 홈페이지에 생년월일을 입력하는 성인인증제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가 많다”며 “그렇다고 성인인증제를 없애면 청소년 음주문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년월일 방식의 허술한 성인인증제가 아닌 휴대폰이나 신용카드 등으로 인증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만 주류회사 입장에서는 홈페이지에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이 부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음주율은 지난 2006년 28.6%에서 2013년 16.3%로 줄어들었지만 2014년 16.7%로 늘기 시작해 지난해에도 16.7%를 기록했다. 정부와 일선 학교의 대대적인 청소년 음주예방 활동에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청소년 음주는 세계적으로도 느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술 소비량을 조사한 결과 성인 술 소비량은 매년 소폭 감소하고 있지만 최근 5년 새 15세 이하 청소년의 음주율을 보면 남자는 30%에서 43%로 늘었고 여자도 26%에서 41%로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담배업체에도 홈페이지에 성인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소년보호법은 담배도 청소년 유해물질로 규정하고 있지만 국내 담배업체들은 아직까지 홈페이지에 청소년의 접근을 막는 성인인증제를 도입하고 않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주류업계가 자발적으로 나서 성인인증제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지금이라도 강화된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