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부산 신발산업서 배우는 구조조정

기업 R&D·지자체 지원 시너지

사양산업 굴레 벗고 화려한 부활

조선·해운 등 주력업종 구조조정도

산업 역량 키우는 쪽으로 추진을

국장국장




지난 1970~1980년대만 해도 신발산업은 섬유·가전·합판 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 주력 산업이었다.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신발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의 생산공급 기지로 부상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임금 상승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생산 기지를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옮겨 가면서 국내 신발산업도 서서히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1990년 43억달러에 달한 신발 수출액은 2000년에는 7억9,00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크게 위축된 신발산업이 최근 들어 부산을 중심으로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2008년 이후 부산 신발제조업의 연평균 출하액 증가율은 7.7%에 달한다. 이는 부산 지역 제조업(1.4%)의 5.5배에 이르는 것이고 전국 제조업 평균(4.9%)보다도 월등히 높다. 국내 최대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신발업체인 태광실업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1조3,183억원을 기록하면서 2년 연속으로 조원 단위의 매출을 올렸고 창신INC도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한물간 산업으로 치부되던 국내 신발산업이 어떻게 되살아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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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업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은 피나는 연구개발(R&D)로 중국이나 베트남 제품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했다. 삼덕통상의 경우 국내 직원 350명 가운데 R&D 인력이 100명을 넘는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신발업체들은 글로벌 업체들과의 확고한 분업구조를 정착시켰다. 나이키와 아디다스·아식스·뉴발란스 등의 메이저 업체들은 디자인·마케팅·유통을 맡고 국내 업체들은 생산을 맡는 협력체제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신발업체들의 부활에는 지자체의 행정적 뒷받침도 한몫했다. 부산시는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내에 있는 국제물류도시 산업단지를 신발 제조기업의 공장 용지로 공급해달라’는 업체들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줬다. 원래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서 신발업종은 공해 유발 업종에 해당해 경제자유구역에 입주를 할 수 없었지만 부산시 공무원들은 신발산업이 더 이상 공해 업종이 아니라 첨단산업이라는 인식 아래 관련 제도 개선에 주력했다. 이들은 현장 실사와 제품 생산 공정 검증으로 유해물질 처리가 양호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후 산업단지 관리 기본계획 변경권자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등과 1년 동안 15차례 회의를 열고 설득한 끝에 경제자유구역 입주 업종으로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해 조성된 신발산업집적화단지에 모두 10개 기업이 중국이나 개성공단 등에서 유턴함으로써 부산의 일자리 창출을 선도하고 있다.

부산 신발산업의 부활 과정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정부는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조선과 해운 등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 어려움을 겪자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최근 부실 징후를 보이는 602개 대기업 가운데 32개 기업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조선과 건설·해운·철강·석유화학 등 5대 취약 업종 기업이 17개로 전체 구조조정 대상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른바 부실 기업 솎아내기가 본궤도에 오른 모습이다.

산업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부실 기업 정리에 치우친 나머지 산업 자체를 도태시키는 잘못은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신발산업이 정보통신기술(ICT) 접목 등을 통한 고부가가치화와 지자체의 행정 지원 노력을 등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점을 보면 ‘한계 기업은 있어도 한계 산업은 없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문제 있는 기업은 솎아내더라도 전체 산업의 경쟁력은 키워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csoh@sedaily.com

오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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