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중국 비관세 만리장벽에 신음하는 한국기업



오는 10월부터 중국에서 분유를 팔려면 브랜드는 3개, 제품 수는 최대 9개까지만 가능하다. 황당한 이 규제는 사실상 우리 제품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국내 분유업계의 분석이다. 우리 기업이 중국에 수출하는 분유 브랜드는 7~8개로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11일 만난 한 분유업체 관계자는 “제품 안전 문제나 품질을 이유로 공장 실사를 나오거나 검역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제품 숫자를 통제하는 것은 명확한 비관세장벽”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식품업체는 최근 별다른 이유 없이 중국에서 통관이 늦어지는 경우가 잦다. 업체 관계자는 “현재는 48시간 이내에 통관해주는 게 원칙인데 특별한 이유나 설명도 없이 통관을 하루 이틀 늦게 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식품은 유통기한이 중요한데 중국의 특성상 항의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어서 속만 태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뿐이 아니다. 내년 5월부터는 중국 소비자들이 해외 직접구매로 수입하는 화장품도 모두 당국의 위생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한류 바람을 탄 한국산 화장품 수입을 막아보겠다는 의도다.


중국의 ‘비관세 만리장벽’에 국내 기업들이 신음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비관세장벽을 더 높이거나 최소한 기존의 규제를 풀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실제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유아용품인 분유부터 각종 유제품, 아이스크림, 조미김, 자동차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비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다.

비관세장벽협의회에 따르면 비관세장벽은 중국 26건, 인도네시아 5건, 일본 4건 등으로 중국이 전체(48건)의 54%를 차지했다. 비관세장벽협의회에 신고 접수된 것만도 48건으로 실제 기업들이 겪는 비관세장벽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사드 문제로 양국 관계가 좋지 않은 만큼 비관세장벽을 더 세우거나 풀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기업을 괴롭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최근 들어 반덤핑조치보다 비관세장벽을 더 많이 쓰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수출품에 대한 중국의 반덤핑 조치는 2000~2008년 46건에서 2009~2015년 8건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위생·검역 규제는 249건에서 887건으로 많이 늘었으며 기술장벽 건수도 507건에서 681건으로 증가했다.


실제 중국의 대표적 무역기술장벽이라면 단연 강제성제품인증(CCC)이 꼽힌다. CCC는 자동차뿐 아니라 158종의 공산품에 대해 국제인증을 받은 품목이라도 중국만의 인증을 받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또 인증서 유효기간이 지나면 재인증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중국에서 차를 팔기 위해 자동차 인증을 받으려면 약 1년 정도의 기간에 평균 7억~9억원이 든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이나 유럽의 기술수준이 더 높고 까다롭다”며 “이 분야에서 아직 뒤처져 있는 중국의 인증작업이 수월치 않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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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는 세계적 평가기관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 삼원계배터리가 안전성 문제로 중국 정부의 인증심사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양사 모두 승인을 다시 신청할 계획이지만 인증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강제성제품인증 등 비관세장벽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실제로 발생하는 수입장벽 사례들을 봐도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돼 기업들의 피해가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의료기기 수입을 허가할 때 국제공인성적서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주요한 비관세장벽이다. 중국으로 제품을 수출하려면 현지 식품의약품감독관리총국(CFDA)의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중국은 의료기기 분야에서 자국 내 검사기관 발행 시험성적서만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업체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다시 시험성적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시험검사를 신청하면 3~6개월 뒤에야 검사가 시작된다. 게다가 중국 CFDA의 시험성적서는 유효기간이 12개월이기 때문에 기간이 지나면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중국은 법 집행이 투명하지 않은데다 지역마다 통관 및 인증이 통일돼 있지 않다. 같은 제품이라도 상하이에서는 통관된 제품이 베이징에서는 안 되기도 한다. 다롄과 상하이에서는 동일 물건에 관세가 다르게 매겨지는 경우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되지 않는 상황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한국과 중국은 반덤핑 규제와 관련해서는 협의 등을 통해 서로 자제하고 있지만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통일된 기준이 없고 정보공개가 투명하지 않는 식의 비관세장벽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장품의 경우 중국에서 행정검사와 허가증 발급 등에 걸리는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크다. 자외선차단·미백·제모 등 특수용도 화장품의 경우 행정허가 검사 및 수입행정허가증 발급 소요기간이 7~12개월까지 걸린다. 사실상 신제품을 제때 출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출한 서류의 문구 하나 때문에 검사에서 탈락해 다시 6개월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조미김 같은 식품에 대한 중국의 비관세 만리장벽도 높아지고 있다. 3월 중국 정부는 2만달러어치의 한국산 조미김(670㎏) 통관을 거부했다. 통관거부 이유는 중국 위생기준치의 최대 17배에 달하는 세균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한국산 김 수입을 막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추정이 많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비관세장벽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별기업 입장에서는 중국 정부에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치만 해도 중국 수출에 10년가량 애를 먹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으면 중국 정부의 비관세장벽을 뚫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중국이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수입을 막지는 않기 때문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우리나라 기업들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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