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단독]'동전월급' 甲질 법으로 막는다

한은, 동전 거래개수 제한

주화 '법화성' 개정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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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경기도 성남의 한 업소에서 일한 아르바이트생이 미지불 임금 17만원을 달라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낸 끝에 받게 됐다. 고용부 결정에 불만을 품은 사업주는 이 아르바이트생에게 10·50·100원 동전이 담긴 자루 2개를 줬다. 또 6월 경남의 한 건축업자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4명의 밀린 월급 440만원을 100원과 500원짜리 동전 2만2,802개로 지급해 물의를 일으켰다. 건축업자는 공사대금 결제가 늦어지면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급을 주지 못하던 상황에서 그동안 잘해줬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사장에 나오지 않는 데 화가 나 동전으로 체불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이 같은 업주들의 행위는 불법이 된다. 한국은행은 물건을 사거나 임금을 지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동전의 개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그동안 고용 근로자의 체불임금을 동전 수만 개로 지급해 사회적 공분을 불러오곤 했던 악덕 고용주가 사라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5일 한은에 따르면 한은은 주화(동전)의 ‘법화성’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화성이란 한국은행법 48조에 따라 모든 거래에서 무제한 통용이 가능하도록 한 법정 통화의 성격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한은법 개정이 필요하다.

한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은행권뿐 아니라 동전도 법정통화로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 때문에 사업주가 악의적으로 체불임금을 동전으로 지급하더라도 근로자가 이를 거부할 수 없는 문제 등이 종종 발생했다”며 “동전 거래개수를 제한하면 이 같은 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또 “근로자가 일정 개수를 넘어서는 동전으로 마련된 임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의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라며 “이미 신용카드나 각종 페이 등 전자지급결제 수단이 마련돼 있는 상황인 만큼 동전 거래개수를 제한하더라도 국민들이 불편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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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치권은 동전으로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규제 법안을 마련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이 체불임금의 동전 지급을 법으로 규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대 국회 들어선 7월에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임금을 지폐 또는 계좌이체로 지불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문제는 이 같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19대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개정의 타당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다른 입법례에서 금전의 지급을 규정한 경우 특정한 방법으로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경우는 드물고 지폐 또는 계좌이체 방식을 따르지 않게 될 경우 벌칙에 따라 형사 처벌될 수도 있으므로 그 제재의 정도가 과도하다”는 검토의견을 냈다. 이 법안은 국회 법안심사소위까지 회부됐지만 이후 여야 간 정쟁으로 후속 회의가 열리지 않았고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한은은 한은법 개정으로 동전 거래개수를 제한할 경우 근로자가 동전으로 된 임금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만큼 이 같은 일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주요 선진국은 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동전 개수를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유럽연합(EU)의 경우 단일지불 건에서 동전 개수가 50개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영국도 주화별로 10파운드(20~50펜스 주화, 1만4,000원가량), 5파운드(5·10펜스 주화), 20펜스(1·2펜스 주화) 등의 지불금액 상한선을 두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싱가포르 등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주화별로 20개 이상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형사처벌 등 법적 처벌 조항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근로자가 동전으로 된 임금을 거부할 수 있다면 지급 의무가 있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지폐나 계좌이체 등으로 밀린 임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며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법안 개정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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