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폐 끼치지 말라

오현환 여론독자부장

경제·안보정세 '누란지위' 한국

책임은 외면한 채 모두가 남탓만

폐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처럼

각자 역할·의무 지키려 노력해야

오현환 여론독자부장오현환 여론독자부장


“물의를 일으켜,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내인 저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체불만족’의 저자로 유명한 오토다케 히로타다(39)가 불륜 논란에 휩싸이자 아내인 오토다케 히토미가 올해 3월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의 일부다. 오토다케는 팔·다리 없이 태어나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와세다대 정경학부까지 나와 유명해진 인물이라 5명의 여성과 분륜 관계를 맺었다는 뉴스는 일본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었다.

“정부나 관계자들에게 (자식의 일로)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큰 도움을 주고 계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 해 전인 2015년 1월 이슬람국가(IS)에 붙잡혔던 일본인 인질 유카와 하루나(43)를 처형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자 아버지인 쇼이치(75)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심경을 밝혔다. 당시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아베 신조 총리가 IS와 싸우는 중동 국가들에 2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같은 2억달러의 인질 몸값을 요구했던 터라 총리에게 잘못을 돌릴 법한데도 어김없이 “폐 끼쳤다”는 말이 나왔다.

“폐 끼쳐 죄송하다”고 하는 모습은 일본에 오래 머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일본 TV를 통해 많이 보는 일본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정부나 남을 탓하는 모습을 TV에서 흔히 봐온 우리로서는 이 같은 일본인들의 현상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일본에서는 자식 교육시킬 때 가장 강조하는 게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꼽히는 특성이기도 하다. 12세기 후반 가마쿠라 막부로부터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으로 입헌국가가 되기까지 무려 7세기 동안 사무라이가 통치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리에게 치욕을 안긴 나라이지만 서세동점의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입헌국가로 전환해 근대화에 성공했고 영국·프랑스·독일·미국으로 이어지는 산업화 물결에 올라타 식민지 경쟁에 나섰던 나라. 2차 대전 후 폐허 속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한때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기도 했던 나라. 현재 세계 국내총생산(GDP) 3위, 세계 2위의 해양강국, 독일과 더불어 단결력이 강한 대표적인 나라. ‘폐 끼치지 말라’는 것은 이런 일본의 배경에 흐르는 일본의 정신, 의식구조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경기 때마다 거의 일본팀을 제압하면서 일본을 얕보고 우리만 잘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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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본 예찬론을 펴자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국내 정치를 보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다.

한반도가 핵무기의 불장난 위험에 봉착해 있는데도 안보문제를 안에서 해결 않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중국을 방문하는 의원들, 나라가 위험에 처하더라도 내 집 옆에는 절대 안 된다는 주민들. 중국이 사드를 문제 삼는다지만 북핵이 해결되지 않으면 최소한 남한에도, 일본에도 핵무기가 배치돼야 하는 불가피성을 모른다는 것인가.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기술 수준이 우리를 추월해 경제가 백척간두의 누란에 놓여 있는데도 경제를 살리기 위한 법안은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실업자들과 국민들이 아무리 아우성쳐도 입법자들은 눈감으면 그만인가.

‘폐 끼치지 말라’는 얘기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이 되는 두 가지 정신, 자유와 책임 가운데 책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를 탓하고 정적을 탓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 수는 있지만 그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부터 챙겨야 하지 않을까.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 않고 앉은 채 하는 수행) 8년으로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해 유명한 성철 스님이 조계종 종정에 있을 때 해서 유명해진 말이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싸움에 이기려면 적에게서도 배워야 한다고도 했다. 우리 모두 스스로 냉정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진실을 받아들여 실천해야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살 수 있지 않겠는가./hhoh@sedaily.com

오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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