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중국 해외 각지에 검열단을 급파하는 한편 외교관과 무역일꾼 등 해외 근무자의 가족들을 본국으로 잇따라 소환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영국 주재 태영호 북한대사관 공사나 해외 식당 종업원 등 출신 성분이 좋은 해외 파견자의 탈북이 잇따르는 데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감시·통제 강화가 오히려 고위층 엘리트들의 탈북을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8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최근 대사관·대표부·무역상사·식당 등 북한의 모든 해외 파견기관들에 대해 도주·행방불명 등 사건 및 사고 발생 요인을 사전에 적극 제거할 것을 지시했다. 또 실적이 부진한 단위는 즉각 철수하라는 지시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노동당과 내각, 보위성에서는 지시 이행을 위해 각종 검열단을 해외 각지로 급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외 파견인력이 가장 많은 중국에는 재정성과 보위부 소속의 검열단을 차례로 파견해 강도 높은 조사에 착수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하지만 대북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자란 혁명 2세대 자녀의 경우 오랫동안 서구화된데다 각종 정보기술(IT) 기기 등을 이용한 다양한 정보 접근이 가능해 출신 성분이나 당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 등으로 내부결속이 급속히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핵심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북한 체제가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경제난과 정치적 탈북이 대세였다면 앞으로 해외 주재관들의 ‘이민형 탈북’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태 공사를 비롯해 최근 여러 명의 북한 외교관들이 망명을 결심하기까지는 자녀들의 영향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서방 국가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과 장래 문제인데 북한 외교관들의 해외 체류기간인 3~5년 동안 외국에 적응한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탈북을 권유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올해 초 4차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고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면서 외화수입이 뚝 끊기자 외교관 등 해외 파견자들의 외화벌이 부담이 한층 가중돼 탈북 도미노가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김정은 체제의 공포정치가 강화되면서 태 공사와 같은 이탈자가 추가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통일부는 이례적으로 공식 입장을 통해 “(태 공사가 당 조직 책임자로 북한 체제 선전을 담당했던 고위급 외교관이라는 점에서) 그의 탈북이 북한 김정은 체제의 내부결속에 금이 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엘리트 계층의 연이은 탈북에 격노해 이를 막지 못한 책임자들을 고사총으로 처형하는 등 공포정치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태 공사의 탈북 이후 북한은 감시와 통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주민들이 남쪽에 대한 동경심보다 적개심을 갖도록 교육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희영·박경훈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