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류정필의 음악 이야기] 연주가와 개런티



순수예술을 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도 연주료(개런티)는 매우 중요한 의미다. 특히 공연을 통해 모든 수입을 얻는 프로 연주가들은 본인의 연주료가 곧 실력에 대한 평가로 여겨지기에 스포츠 선수들의 연봉만큼이나 이 문제에 매우 예민해진다.

솔리스트 연주자 중 평균 개런티가 가장 높은 부류로는 성악가가 꼽힌다. 그중에서도 테너가 가장 많이 받고 소프라노, 바리톤 순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초청돼 온 성악가 중 가장 많은 연주료를 받은 사람은 2007년 작고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다. 콘서트 한번에 약 5억 원의 개런티를 챙겼다. ‘쓰리테너’로 꼽혔던 플라시도 도밍고나 호세 카레라스도 각각 약 3억 원과 2억 원이 넘는 연주료를 받았다.


20세기 초 최고의 연주료를 받았던 역사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죽은 뒤 ‘목소리의 기적’이라 불렸던 자코모 라우리 볼피와 세계 최고의 음색으로 평가받은 베냐미노 질리 두 사람이 카루소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둘의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였는데 개런티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라우리 볼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과의 계약이 끝났을 때 자신의 개런티가 질리보다 많아야 재계약하겠노라 엄포를 놓았고, 극장 측은 질리의 화를 돋우지 않기 위해 볼피의 개런티를 질리보다 딱 10센트만 더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기분이 좋아진 라우리 볼피는 새 계약서에 재빨리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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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료 얘기를 실컷 했지만 사실 대다수 클래식 연주자들은 돈보다는 알아주는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는 걸 꿈꾼다. 그도 그럴 것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미국 워싱턴의 한 지하철역에서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쓰고 연주를 하는 몰래카메라 실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연주하는 45분간 그 앞을 지나간 1,097명 가운데 동전 한 닢이라도 던진 사람은 27명에 불과했다.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은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였고 그의 개런티는 1분에 약 1,000달러 수준으로 높지만, 그날 지하철역 앞 연주로 모인 돈은 겨우 32달러였다고 한다.

바삐 움직이느라 음악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었고 연주자를 평범한 거리의 악사로 알고 무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날 조슈아 벨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연주하고 진심 어린 갈채에서 비롯된 연주료를 받아 진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고 싶은 것이 대부분 클래식 연주자들의 소망인 이유다. (테너)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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