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8·25 가계부채 대책’은 사실상 처음으로 정부가 개입해 주택공급 물량을 조절하겠는 의지를 밝힌 대책이다. 그동안 정부는 주택공급은 민간의 자율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조절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다만 올해 1~6월 인허가 물량이 이미 지난해에 비해 18.4% 늘어난 상황에서 반 박자 늦게 정부가 나서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예비심사 안 받으면 탈락…까다로워지는 분양보증=국토교통부는 이번 대책에서 주택공급 단계인 ‘택지매입-인허가-착공·분양-준공·입주’ 등 맞춤형 물량조절 방안을 마련했다.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정 수준의 주택공급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각 주택공급 단계별로 물량을 적정화할 수 있도록 정부·공공기관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일단 택지매입 단계에서는 분양보증 예비심사를 새롭게 도입했다. 초과공급이 우려되는 지역을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이곳에서 주택을 공급하려는 사업자가 부지를 사들이기 전 사업성·수행능력·사업여건에 대한 심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예비심사를 거치지 않을 경우 분양보증 자체가 거부된다.
예비심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미분양 관리지역도 대폭 확대된다. 7월 현재 경기 평택·고양시 등 20개 지역이 미분양 물량을 기준으로 지정돼 있지만 오는 9월부터는 인허가가 급증한 지역과 청약 경쟁률에 비해 계약률이 저조한 곳도 추가된다.
또 착공·분양 단계에서 거쳐야 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요건이 강화돼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와 같은 분양보증 보류 사례가 꾸준히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미분양 관리지역에서 500가구 이상 공급하는 사업장을 포함해 △워크아웃 기업 △국세·지방세 체납기업 등은 HUG 지사가 아닌 본점에서 보증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밖에 담보 대용료 제도와 가산 보증료도 폐지된다. 담보 대용료는 소유권 미확보 부지와 가압류 등 권리제한이 있는 토지가 포함된 부지를 분양보증 신청할 때 담보 대신 받는 비용이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사업부지가 완전히 확보돼야만 분양보증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된다.
업체별 보증한도를 초과해 보증신청을 할 때 초과분에 대해 지급하는 가산 보증료 역시 폐지 이후에는 보증한도를 넘어선 부분은 아예 분양보증에서 제외된다.
◇LH 공공택지 분양 대폭 감축=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 공급물량도 대폭 줄이기로 했다. 올해 공급물량은 4㎢(7만5,000가구)로 지난해 6.9㎢(12만9,000가구)에 비해 58%가 이미 줄어들었다. 국토부는 내년에도 분양주택 용지를 추가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다만 공공임대주택과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은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민간 분양 물량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을 강화해 인허가를 줄이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토부와 지자체 간 주택정책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주택공급이 한번에 쏟아지지 않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박 실장은 “지자체가 해당 지역 내의 실시간 통계나 예측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지역별 맞춤형 분석자료를 제공해 적절한 물량이 유지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공급 다 풀렸는데…반 박자 늦은 대책=정부는 이번 주택공급 속도조절을 통해 과거 평균 수준인 30만가구가량으로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1~6월 기준 주택 인허가 물량이 약 35만5,000가구 수준으로 과잉공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반 박자 늦은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반년 전 이미 금융위원회와 국토부 간 논의에서 주택공급 조절 카드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미루다가 뒤늦게 가계부채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물량수급을 결정할 수 있는 방안인 LH 공공택지 분양 감축 역시 올해는 계획대로 진행한 뒤 내년에야 적용된다.
한편 분양권 전매제한, 청약제도 강화 방안은 금융위와 국토부 간 논의는 진행했지만 최종 대책에서는 빠졌다. 정부는 시장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한 뒤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계속 검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