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위기의 유럽, 개혁이냐 분열이냐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유로존 경제침체 근본적 원인

개별국 실패 아닌 유로화 때문

채무탕감 등 재정지원 늘리고

역내 산업격차 줄일 정책 필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제는 좋지 않았다. 그리스를 포함해 유로존에서 부진한 국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 때보다 더 심각한 경제적 침체를 2008년 이후 감내해야 했다. 물론 독일과 같이 좋은 성장세를 유지한 나라들도 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의 호황은 근린궁핍화정책의 결과로 봐야 한다. 유로존 다른 나라들의 희생을 대가로 성장세를 유지한 것이다.

유로존 경제침체의 원인에 대해서는 네 가지 설명이 주로 논의돼왔다. 먼저 ‘희생자를 비난하는 방식’이다. 독일은 그리스를 가리켜 방탕하게 재정적자를 늘린 결과 지금과 같은 위기에 빠진 것이라고 비난해왔다. 하지만 이는 순서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재정적자는 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스페인·아일랜드와 같은 나라들도 유로존 위기 발생 전에는 재정 흑자를 기록해왔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중이 높은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가 대두된 후에 적자는 커졌고 채무는 늘어났다. 다른 유로존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희생자 비난 방식을 주장하는 다른 이들은 과도한 복지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하지만 스웨덴과 노르웨이같이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은 더 풍족한 복지와 더 엄격한 노동자 보호제도를 갖추고 있다. 유로존 탄생 전에는 지금 부진한 그리스와 같은 나라들 대부분이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들의 침체는 노동법과 복지 시스템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가 있다면 유로존 통화 시스템의 변화 때문으로 봐야 한다.


유로존 경제침체 원인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은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유럽의 무능한 정치 지도자들이 경제를 망쳤다는 것이다. 불평등을 조장해 경제적 수요를 떨어뜨리고 잠재적인 성장률을 악화시킨 것은 정치인들의 잘못된 판단의 결과다. 하지만 현재 유럽의 상황에서는 경제적으로 유능한 정치인이 지도자가 돼도 좋은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단순히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관련기사



유로존에 뿌리 깊은 반개혁적 태도가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예를 들면 유로존 당국 공무원들이 경제 전반에 심어놓은 답답한 규제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도 약점이 있다. 복지와 노동시스템이 그러하듯이 유로존의 이러한 경향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네 번째 설명과 이어진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은 유로존이 아니라 유로화다. 그 어떤 정치인도 현재 유로화 시스템에서는 유럽의 전반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유로라는 통화가 한 국가 차원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국가 경제가 위기를 겪게 될 경우 환율을 조정하거나 시장에 돈을 푸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유로화 도입은 유럽 국가들의 이러한 해결책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유럽에서 독일과 같은 나라들이 부유해지고 그리스와 같은 나라들이 가난해지는 국가적 빈부격차가 커졌지만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유로존은 유지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도입해야 한다. 먼저 성장에 대한 집중보다 유럽 내 경제 안정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재정적자가 심한 나라들에 채무를 경감해주거나 추가 자금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을 개혁하는 것도 시급하다. 현재의 ECB는 인플레이션에 과도한 신경을 쓰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하는 것처럼 실업률과 성장률, 경제 안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산업 정책 측면에서는 유로존의 부진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들을 쫓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국가 간 산업 격차가 커지기만 한다면 유로존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이혼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유로존과 같은 거대한 집단이 분열된다면 그 비용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쌀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6월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Brexit)에서 그 분열의 씨앗을 봤다. 지금은 유럽에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유럽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