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한양삼십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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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새벽의 과거 시험장. 어떤 이는 붓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하고, 다른 이는 책을 펴서 살펴보며, 또 다른 이는 피곤해 행담에 기대 졸고 있다…. 반평생 넘게 이런 곤란함을 겪어 본 자가 이 그림을 대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질 것이다.” 조선 후기 과거시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김홍도의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를 보고 그의 스승 강세황이 소감을 적은 글이다. 장원급제의 꿈을 안고 전국에서 몰려든 유생들이 느꼈을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져 온다.


그림 속 졸고 있는 유생을 보노라면 한양 오는 여정이 참 고단했구나 하는 측은지심이 들기도 한다. 지방이 고향인 유생들은 과거 시험 한 달여 전에 집을 나섰다고 하니 여간 힘든 고생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한양의 시험장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는 수험생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 문경새재가 대표적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이어진 길은 지름길인 추풍령·죽령도 있었지만 대다수 유생들은 문경새재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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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을 넘으면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지나면 대나무 잎에 쭉 미끄러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에 기쁘고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게 된다는 뜻까지 있었으니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넘으며 금의환향을 꿈꿨을 것이다. 호남 유생들이 걸었던 장성새재도 많은 아픔과 희망을 품고 있다. 고개가 너무 높아 새도 중간에 쉬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이곳을 터벅터벅 지났을 유생들의 고충이 오죽했을까 싶다.

문경·장성새재를 지나 한양에 다다른 길목인 남한산성 주변 ‘한양 삼십리 길’을 경기도가 복원할 모양이다. 9월 초에 공사에 들어가 내년 초까지 12㎞ 전 구간을 정비할 계획이다. 이 길은 산세가 수려한 구릉지 숲길이라니 완공되면 조선 유생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이참에 전국의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가던 길’을 복원하고 연결해 걷기코스를 만들어도 좋겠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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