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우울증 치료 걸림돌 ‘60일 이상 약 처방제한’

정신과 의사에만 허용…외국선 없는 규제

SSRI 항우울제 치료중단→ 자살 등 속출

복지부, 9월 간담회 열어 개선방안 논의

항우울제(우울증치료제) 처방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가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낮은 치료율의 핵심 요인 중 하나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9일 대한뇌전증학회와 심상정 정의당,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공동개최한 ‘4대 신경계질환자의 우울증 치료 정책토론회’에서 홍승봉 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부작용이 적고 약효가 좋은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 계열의 항우울제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만 60일 이상 장기처방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라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2002년부터 이 같은 규제를 도입했지만 의학·임상적 근거는 뚜렷한 게 없다. 외국에선 반대로 일반 의사들도 SSRI 항우울제를 장기간 처방할 수 있다.

홍 회장은 “뇌전증(간질)·치매·파킨슨병·뇌졸중 등 4대 신경계질환자의 47~56%가 우울증을 동반하는데 1~2년가량 SSRI 항우울제를 먹어야 완치된다. 6개월~1년 먹다 중단하면 50% 이상 재발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非)정신과 의사의 SSRI 항우울제 60일 이상 처방규제는 우울증 치료중단으로 직결되곤 한다. 신경계질환과 우울증을 함께 앓는 환자들 가운데 정신과에서 진료받기를 꺼리는 이들이 그 예다. 우리나라의 우울증 치료율이 10%를 밑돌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이고, 자살율이 1위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규제의 일관성도 없다. 부작용이 많은 삼환계(TCA) 항우울제는 오히려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우울증보다 치료가 어려운 조현병·조울증도 모든 의사가 치료제를 처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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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확실한 우울증 환자는 600만명에 이른다. 전체 의사의 3%에 불과한 정신과 의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가네모토 고스케 일본 아이치의대 정신과 교수는 “일본에선 우울증 환자의 6%만 처음부터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는다”며 “비정신과 의사들도 SSRI 항우울제를 별다른 규제 없이 처방하며 효과가 없거나 처음부터 증상이 심할 때 정신과로 의뢰한다”고 소개했다.

YK 윙 홍콩중문대 정신과 교수는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신과와 신경과 등 다른 진료과목 의사들이 협력해 협진 모델을 만들고 상호 진료의뢰·회송 활성화에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60일 사용제한을 조정할 필요가 있지만 정신과와 달리 3분진료가 보편화된 여타 진료과목에서 심리사회적 평가없이 항우울제 장기처방만 하면 조증으로 전환되거나 자살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이런 상태로 계속 끌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9월중 관련단체·학회·심평원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열어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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