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지역경제 살리는 서비스디자인의 힘] "잊힌 가야설화, 벽화로 되살리니 마을이 살아났어요"

<상>역사문화마을로 탈바꿈하는 김해시

유적지로 개발 제한된 회현동

침체 주원인을 강점으로 활용

벽마다 옛이야기 시화 그리고

골목길 이름 순우리말로 변경

고령자 많은 마을 특성 이용해

'할매빵·할매리카노' 판매도

독특한 분위기에 관광객 급증

미국의 디자인 혁신 기업 아이디오는 어린이용 칫솔 손잡이를 굵게 만들었다. 이 닦는 아이들을 관찰해 보니 대부분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감싸듯 잡고 있었고 손에서 빠지지 않으려면 칫솔대가 굵어야 했다. 어린이용 칫솔은 어른의 칫솔보다 작아야 한다는 생각을 깬 혁신적인 콘셉트였다. 그 후 어린이 전용 칫솔은 통통한 고무 손잡이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현장에서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해 니즈(needs)를 충족시키는 수요자 중심의 방법론을 ‘서비스디자인’이라 부른다. 최근에는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도 서비스디자인적 사고가 적용되고 있다. 행정자치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정책의 수요자인 국민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4년 국민참여방식의 ‘정부 3.0 국민디자인단’을 꾸렸다. 이후 공무원과 국민, 서비스디자이너가 함께 참여해 공공서비스를 개발하면서 낙후됐던 지역 경제가 하나 둘씩 살아나고 있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경남 김해와 경북 고령 등 서비스디자인 정책으로 부활하고 있는 지역의 사례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경남 김해시 회현동 주민센터를 두르고 있는 울타리 벽면에 전해 내려오는 가야시대 설화가 시화로 그려져 있다./김해=백주연기자경남 김해시 회현동 주민센터를 두르고 있는 울타리 벽면에 전해 내려오는 가야시대 설화가 시화로 그려져 있다./김해=백주연기자





30일 부산역에 내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40분을 달려 도착한 경남 김해시 회현동. 마을 골목 골목에 옛 가야의 색깔이 묻어났다.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의 사랑 이야기가 벽면마다 시화로 그려져 혜윰(생각을 뜻하는 순우리말)길과 마루(하늘을 뜻하는 순우리말)길, 다솜(사랑을 뜻하는 순우리말)길로 이어지며 하나의 설화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무덤(수로왕릉) 맞은편에 위치한 김해 봉황대에는 혜선이와 섬섬이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또 다른 문화골목을 만들어 냈다. 마을을 가야의 설화 이야기로 디자인한 후 회현동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은 크게 늘었다.

수로왕릉과 봉황대 등 가야 문화 유적지로 인해 개발이 제한돼 침체돼 있던 김해시 회현동이 서비스디자인을 통해 역사문화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주민들과 서비스디자이너, 전문가, 공무원들로 구성된 국민디자인단은 지역 경제 침체의 주원인이었던 문화재 유적을 오히려 강점으로 활용해 마을을 살려냈다. 서비스디자인을 맡은 송기연 시프트 디자인컨설팅 대표는 “회현동만의 독자적인 매력을 살릴 방법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다가 문화 유적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알리자고 의견이 모아져 설화 마을로 디자인하게 됐다”며 “서비스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니 위기가 기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어둡고 좁았던 골목 벽면엔 태양광 등을 달고 밝은 색을 칠했다. 길 중간을 막고 있던 전봇대는 뽑아서 벽 쪽으로 옮겼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던 길목이 이제는 꼭 필요한 지름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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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밝은 그림을 그리고 전봇대를 벽 쪽으로 옮겨 지름길로 탈바꿈한 김해 회현동 골목./김해=백주연기자벽면에 밝은 그림을 그리고 전봇대를 벽 쪽으로 옮겨 지름길로 탈바꿈한 김해 회현동 골목./김해=백주연기자


경남 김해시 회현동 주민센터 앞 카페에서 바리스타 할머니가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할매리카노’다./김해=백주연기자경남 김해시 회현동 주민센터 앞 카페에서 바리스타 할머니가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할매리카노’다./김해=백주연기자


마을 주민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특징은 역으로 이용했다. 주민센터 앞 카페에서 ‘할매빵’, ‘할매리카노’ 등의 이름을 붙인 메뉴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 회현동 할머니 두 분이 이 카페의 바리스타다. 하루에 카페에 다녀가는 손님은 수 십 명에 달한다. 관광객 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재밌어하며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국민디자인단은 꾸준히 주민 인터뷰를 다니며 현장을 분석하고 월 2회씩 정기 모임을 하고 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디자인을 개선한 후 지역 경제가 좋아지는 것을 몸소 느껴서다. 송학진 회현동 통장단 대표는 “예를 들어 대형 주차장을 만들더라도 김수로왕과 결혼한 인도 공주 허황옥이 살던 궁을 형상화하는 식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낙후된 지역을 개선하는 데 좋은 방법인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경상남도에서 추진하는 회현동의 국민디자인 과제는 총 338개의 지방자치단체 국민디자인 과제 중 우수과제로 선정돼 행정자치부에서 1,0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다.

/부산=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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