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헬조선과 금융시장









요즘 시중의 최신 유행어는 단연 '헬조선'이다. 애초에 웃자고 만든 말이었을 텐데 웃음이 나지는 않는다. 저속한 느낌이 강하다고 해서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유행어가 자조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공정하지 않은 룰'이 우리 사회 도처에서 너무 많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않은 룰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위협받거나 그들의 어려움이 오히려 가중되는 '비정상적' 상황들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금융 시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보험은 물론 은행·상호저축은행·대부업·신용카드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약자가 더 손해를 보거나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실생활에 허다하다.

뭔가 모르게 너무 억울하기는 한데 딱히 호소할 길 없는 대표적 사례가 고가 차량이 연계된 자동차 보험 사고다. 국산차와 외산차 간의 사고 사진이 인터넷 등에서 회자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느 쪽이 피해자인지와 상관없이 '국산차 운전차 이제 어쩌냐'는 식이다. 실제로 정지 신호를 확인하고 정지하려던 EF쏘나타 택시를 람보르기니가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택시가 완전히 정차하지 않았기 때문에 람보르기니의 과실이 90%, 택시는 10%로 적용됐다. 그런데 금액으로 따져보니 람보르기니의 대물 손해 부담금은 171만원, 택시는 7,000만원으로 책정됐다. 누가 봐도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정해진 룰'이 그렇다고 하니 다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최근 금융당국이 이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기는 했지만 사고 관련 차량은 물론 아무 잘못도 없는 저가 차량 운전자들까지 보험료를 더 내는 '비정상'의 피해자로 살고 있는 현 상황을 보면 늦은 감이 굉장히 큰 조치다.

신용카드 역시 못 가진 자에게 불리한 금융상품 중 하나다. 신용카드사들의 주요 수입원인 현금 서비스와 카드론의 이용 고객은 대부분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저신용등급자들이다. 수입과 저축이 넉넉하다면 고이율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용카드 대출 상품에 손을 뻗지는 않을 터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용카드사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누구에게 혜택이 갈까. 최근 국정감사 기간 동안 공개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신용카드사별로 화려한 부가 혜택을 자랑하는 VVIP카드들은 2개 중 1개꼴로 적자를 내고 있다. 카드사들은 VVIP카드 회원들의 이용액이 크기 때문에 기여도가 높다고 항변하지만 일시불 결제보다 고이율 현금 서비스가 더 남는 장사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또한 중간신용자들의 대출 부담 완화를 위해 저축은행과의 연계 영업에 나서볼 법도 한데 수익이 나지 않고 잡무에 불과하다며 계속 외면하고 있는 은행도 경제적 취약 계층에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이 헬조선의 1등 원흉은 아니겠지만 금융 시장 내의 불공정하고 비정상적인 행태들은 개인의 생존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금융 시장에서 작용하는 룰은 참여자를 늘리는 것이 기준이어야지 생존 게임처럼 탈락자를 양산해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정영현 금융부 차장 y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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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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