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리뷰-뮤지컬 '도리안 그레이']毒이 된 '대사·영상미 집착'

김준수·박은태 스타 캐스팅에

호화 연출진의 하반기 기대작

그림 통한 '영혼의 타락' 표현

과감한 영상 활용 신선했지만

공연 내내 몰아치는 현학적 대사

개연성 없는 스토리는 아쉬워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 도리안 그레이가 아름답다고 말하라고.”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독이 됐다.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2시간 반 내내 현학적인 대사와 영상으로 한껏 멋을 부린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남긴 아쉬움이다.


지난 3일 개막한 이 작품은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재해석한 창작 뮤지컬로 영국의 귀족 청년 ‘도리안’이 불변의 아름다움을 향한 탐욕으로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바꾸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김준수가 빼어난 용모의 귀족 청년 도리안 그레이를, 박은태가 옥스퍼드 출신의 냉정한 천재이자 도리안을 통해 자신의 열정과 본능을 대리 경험하는 헨리 워튼을 맡은 가운데 이지나(연출)·조용신(극본)·김문정(작곡) 등 초호화 연출진이 가세해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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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아름다운 청년이 파멸하는 과정은 무대 위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막이 오르고 20분 만에 암흑에서 순백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도리안의 모습은 헨리를 만나기 전 순수했던 영혼과 신비함이 더해져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름답게 빛나던 도리안의 초상화는 극이 진행되며 핏빛 흉물로 변해 시각적인 충격을 안겨준다.



문제는 극 중 도리안처럼 ‘미(美)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쾌락·아름다움·인간의 본질·도덕·타락 등 공연 내내 몰아치는 현학적인 대사는 ‘곱씹을 시간’도 없이 휘발된다. 원작 자체가 무겁고 철학적이라지만, 명언 집에 나올 법한 대사들이 반복되며 좀처럼 극 안에 빠져들 수 없다. 이야기의 앞뒤를 연결할 이음새도 헐겁다 보니 각 장면은 조각처럼 겉돈다. 도리안이 아름다운 여인 배우 ‘시빌’과 사랑에 빠졌다가 그녀의 엉성한 연기에 실망해 돌변하는 모습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반면 사람들이 향락에 취해 시대를 한탄하거나 도리안에 대한 소문을 나누는 사교 파티 장면은 불필요하게 자주 등장한다. 몇 개의 큰 덩어리로 분절된 스토리가 반복된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과감한 영상 활용은 신선했다. 이번 뮤지컬에서는 기존에 배경 표현에만 그쳤던 영상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 무대를 영상으로, 다시 영상을 무대로 확장하는 시도는 참신했다. 예컨대 시빌의 동생이 도리안을 발코니로 유인해 살해하려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등장하는 영상이 무대 위에 오버랩되며 생생한 상황 묘사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영상에서 벌어진 사건이 스크린이 사라지면 바로 무대로 연결되기도 한다. 다만 같은 방식의 영상 활용이 빈번해 뮤직비디오 상영회에 온 것 같은 느낌도 있어 관객의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10월 29일 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사진=씨제스컬쳐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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