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4차 산업혁명시대 왔는데…규제 발목 잡힌 융합업종 투자

투자 제한 부동산·금융 등 他산업과 결합 활발 불구

벤처캐피털 "법에 벗어날라" 애매한 업종 투자 꺼려

국내 VC 몸사리는 동안 외국계가 스타트업 싹쓸이

"급변하는 산업구조에 맞게 창업 투자 규제 풀어야"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서울경제DB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서울경제DB


스타트업인 A사는 대학생들과 사회초년생들이 전세난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창업 아이템으로 셰어하우스 서비스를 떠올렸다. 최근 전세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이 여러 개인 다세대주택을 고친 뒤 학생 등에게 임대하면 사업성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셰어하우스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사업 규모는 점점 커졌다.

하지만 성장 가도를 달리던 A사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했다. B사로부터 사업 확장에 필요한 투자금을 받기로 했으나 약속한 금액 45억원 가운데 절반도 채 받지 못하게 된 것. A사는 자사 서비스를 ‘주택임대관리업’으로 생각해 투자를 유치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지만 한국표준산업분류상 부동산업으로 분류되면서 B사 소속 벤처캐피털(VC)의 투자금 집행이 막혀버렸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시행령 제4조에 따르면 정부자금을 출자받은 벤처펀드는 부동산업에 투자할 수 없다. 벤처캐피털이 조성한 창업펀드에 출자하는 주요투자자(LP)는 일반적으로 국민연금·군인공제회·우정사업본부 같은 연기금이어서 사실상 벤처펀드의 절반 이상은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A사 관계자는 “법률사무소와 국토부 담당과에 문의를 한 결과 우리 회사가 등록한 주택임대관리업 역시 창업지원법 부동산관리업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며 “우회해서 투자를 유치할 방법을 찾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최근 경기침체 탈출구로 창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창업지원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벤처캐피털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O2O와 핀테크 등 정보통신기술(IT) 발달로 업종 간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지만 법에는 융합산업이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기술의 진보로 모든 업종이 재편되는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온 만큼 금융·보험업과 부동산업, 숙박업 등 창업과 관련된 업종의 규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지난 3월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핀테크업에 대한 일부 규제를 풀었지만 나머지 융합업종에 대한 규제는 여전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VC들은 법 해석상 분류가 애매한 업종에는 아예 투자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정 기간 내에 수익을 내야 하는 VC의 특성상 법 해석을 기다리는 동안 투자금이 묶이면 다른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있어 선뜻 투자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VC업계에서는 ‘신산업 투자는 독’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벤처투자부문 대표는 “해외에서는 부동산이나 금융업이 다른 산업과 만나 다양한 융합 비즈니스가 일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VC들이 창업지원법 시행령에 벗어나는 업종은 아예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핀테크업 규제가 풀리긴 했으나 해외자본과 경쟁하며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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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내 VC들이 규제에 걸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고 있는 가운데 외국계 VC들은 사업이 될 만한 스타트업을 싹쓸이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VC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눈여겨봐온 국내 P2P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정부의 업종 분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제약이 없는 외국계 펀드에서 먼저 투자하면서 기업 가치가 10배 이상 올랐다”며 “창업지원법 적용을 받는 국내 VC들은 기업 가치가 높을 때 투자해 낮은 수익률을 내는 반면 외국계 펀드는 초반에 투자해 큰 수익을 냈다”고 씁쓸해 했다. 그는 “중국은 일단 시장을 열어두고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만드는데 우리나라는 제도로 막아놓은 후에 하나씩 허용해주다 보니 우리 벤처업계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VC들은 신산업뿐 아니라 전반적인 투자규제가 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창업지원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신기술사업금융업자가 운용하는 투자조합은 부동산이나 금융업뿐 아니라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구분 없이도 투자할 수 있지만 일반 VC가 운용하는 창업투자조합은 상장사에도 투자할 수 없다. 노장수 키움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장은 “상장사라고 해도 규모가 작고 성장이 정체돼 투자가 필요한 기업들이 많다”며 “산업이 급격히 변하는 만큼 펀드별로 일반 VC들의 투자행위를 제재하는 지금의 규약은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은 이에 대해 “창업지원법 규제 완화를 정식으로 요구받은 적은 아직 없다”며 “새로운 융합산업이 하나의 벤처산업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백주연·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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