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국내 유통업체들의 주가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와 본격화된 산업 구조조정 여파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힌 상황에서 오는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 유통업체에 추가 악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유통업종지수는 전일 대비 2.15% 내린 458.48에 마감했다. 이는 연초 대비 7% 하락했으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8월7일(598.52)과 비교해서는 23%나 떨어졌다.
주요 대형 유통업체들의 주가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쇼핑(023530)은 이날까지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연초 대비 13% 넘게 떨어졌다. 신세계(004170)(-14.57%)와 현대백화점(069960)(-6.72%), 롯데하이마트(071840)(-26.11%), 이마트(139480)(-17.47%) 등도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민족 최대 명절로 꼽히는 추석을 앞두고도 유통주들이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우선 얼어붙은 내수소비가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 2·4분기 평균소비성향은 전년 동기 대비 0.7%포인트 하락한 70.9%에 머물렀다. 이는 관련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득분위별에서도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1분위를 제외한 2~4분위 모두 평균소비성향이 하락했다. 일부 고소득층을 빼고는 거의 모든 계층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의미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추석이 예년보다 열흘 이상 빨라 추석 수요가 일찍 발생한 덕에 8월 백화점 성장률은 양호한 성장세가 예상되지만 문제는 9월부터”라며 “유통업체들이 추석 선물로 풀린 상품권 회수를 위한 세일행사를 진행하더라도 추석 이후 판매실적이 뚝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달 말 시행되는 김영란법은 유통업체들에는 또 다른 악재다. 김태현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비심리 악화로 유통업계 전반의 영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상품권과 선물세트 판매가 많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실적에 부정적”이라고 내다봤다. 임영주 흥국증권 연구원도 “소비경기가 둔화되고 가계부채로 인한 가처분소득이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김영란법은 유통업 투자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유통업종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제시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의 지난해 추석선물세트 매출 중 김영란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선물가격의 상한선인 5만원 이상 가격대의 비중은 85%에 달했고 현대백화점도 약 90%를 차지했다. 이에 맞춰 유통업체들의 올해 실적 전망치도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이마트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3개월 전 5,706억원에서 현재 4,939억원으로 8%가량 줄었고 같은 기간 신세계도 6% 가까이 감소했다. 롯데쇼핑과 현대백화점 등도 올해 실적 추정치가 모두 낮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