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투입해 친환경차 시장을 육성해온 중국 정부가 현대차를 포함한 20개 자동차 업체에 대해 ‘보조금 편법 취득’ 여부를 조사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로 가뜩이나 중국 내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중국 당국의 전기차 보조금 불법 수령 ‘불똥’이 현대차로까지 번질지 관련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와 중국 매체에 따르면 중국 재정부는 최근 지무시·진룽·우저우룽·치루이·샤오린 등 5개 업체에 대해 부당하게 신에너지 자동차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로 생산 면허 취소 등의 철퇴를 가했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현대차와 일본의 닛산을 비롯해 중국의 비야디(BYD), 장화이자동차(JAC), 지리 등 20여개 자동차 업체를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5개 업체가 부당하게 가로챈 보조금은 10억위안(1,600억원)에 달한다. 지무시의 경우 아예 전기차를 생산한 적이 없는데도 전기차 보조금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드러나 중국 당국으로부터 자동차 생산 면허를 취소당했다. 이 밖에 4개 업체는 전기차 판매량을 부풀려 보조금 규모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4개 업체는 현재 보조금 지급 대상 명단에서 제외됐다.
중국 당국의 조사는 전방위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중국 재정부는 이번 전기차 보조금 부당 수령 업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현대차와 닛산, 중국의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인 비야디, 최근 폭스바겐과 전기차 합작 법인 설립 계획을 발표한 장화이자동차도 추가 조사 대상으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진다. 경제관찰보에 따르면 일부 해당 업체들은 자체 내부조사에 착수하고 당국의 추가 조치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상태다.
커가는 중국 친환경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신차 출시를 계획하던 현대차는 긴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퍼주기식’ 지원책을 벌여온 중국 당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친환경차 정책 기조에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 막 시장 진입에 나선 현대·기아차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의 중국 현지 합작회사인 베이징현대는 급성장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4월께 쏘나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중국에 내놓을 예정이다. 기아차 합작회사인 둥펑위에다기아도 내년 10월 K5 PHEV를 중국에 투입한다. 아울러 출시 시점을 조율 중인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의 시장 투입도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 중국 당국이 이미 전기차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제도를 만들어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지난해 팔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신에너지 자동차는 모두 33만1,000대로 1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급속한 전기차 판매량 확대는 정부 당국의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 업체들이 허위로 부풀린 숫자가 포함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전기차 보조금 부당 수령 업체 명단은 올 초 중국 재정부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3개 부처와 공동으로 90여개 신에너지 자동차 제조업체를 상대로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지 8개월여 만에 나온 결과다. 중국 매체들은 정부 당국이 조사를 확대하면서 추가 보조금 불법 또는 편법 수령 업체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당국은 정부 보조금을 노린 짝퉁 전기차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자칫 철강과 석탄 분야처럼 전기차 산업도 과잉공급 시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발개위와 해당 부처인 공신부가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지원에 관한 새로운 규정을 마련하고 조만간 보조금 정책 수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중국의 전기차 생산 기업은 200개를 넘고 전기차 배터리 업체도 15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은 지난 2013~2015년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만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에 284억위안(약 4조7,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지방정부도 같은 기간 약 200억위안(3조3,000억원)을 지원했다. 중국 당국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오는 2017~2018년에 올해 대비 20% 줄이고 2019~2020년에는 40% 축소한 후 2020년 이후 폐지할 방침이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박재원기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