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실시된 북한의 5차 핵실험을 통해 예상 밖으로 진전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확인되자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미 본토가 공격받는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우려하기 시작했으며 미 군사전문가들도 북한이 오는 2020년이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시카고 등 미 주요 도시를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 미 대선에서 소외됐던 북핵 문제도 차기 대통령의 우선 과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실효성 있는 제재를 결단하라는 압박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해 “북한이 빠르게 핵·미사일 능력을 키우고 있다”며 “불량 정권이 머지않아 시카고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WSJ는 “장거리 미사일의 비행 중 온도변화와 진동을 견딜 수 있는 탄두 등 중요한 기술적 문제점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북한은 빠르게 기술을 보완하고 있다”며 “핵 무장한 북한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도 군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2020년이면 핵탄두가 장착된 ‘검증된 ICBM’을 제조할 기술을 갖출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때쯤이면 핵탄두를 최대 100기까지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축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정보기관들도 최근 몇 년간 위성사진과 북한이 제공한 사진을 분석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 때마다 성능 개선에 성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최근 발사된 북한 미사일에서 연기가 훨씬 선명하게 형성됐는데 이로 볼 때 북한이 개선된 추진체를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스턴글로브는 이들의 분석에 근거해 4년 뒤면 미국 주요 도시들이 북한의 위협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 대선에서도 북핵 문제는 주요 이슈로 급부상했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을 계기로 지금까지 북핵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각각 공식 성명을 내고 북핵 문제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와 클린턴 후보의 ‘기존 대북 정책 실패’에 공세를 집중했으며 클린턴은 추가 제재 필요성을 역설하며 기존 정책의 연속성을 주문했다.
북핵에 대한 미국인들의 위기의식도 점차 고조되는 추세다. 5차 핵실험에 앞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북핵을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미국인은 전체의 60%로 지난해 조사(55%) 때보다 높아졌으며 응답자의 80%는 북핵 중단을 위한 제재 강화에 찬성했다.
다만 미 보수와 진보 측은 북핵 해법을 놓고 적잖은 견해 차이를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9일 유엔을 통해 더 강력하고 새로운 제재에 나서겠다고 한 데 대해 보수 성향의 WSJ는 “뻔한 말”로 평가절하하며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대상국과 거래하는 제3국의 정부·기업에 대한 제재)’을 통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직접 제재하는 결단을 내리라고 행정부에 촉구했다. 반면 NYT는 “북한이 미치기는커녕 너무 이성적”이라며 “오랜 해법은 거의 예외 없이 어떤 형태로든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북한과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