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칼레 대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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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장벽(障壁) 중에서 중국 만리장성은 단연 독보적이다. 2,700㎞에 달하는 성벽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10여년 전 만리장성을 방문했을 때 ‘이런 장대한 장벽이 최소 2,200년 전에 만들어졌다니’하는 놀라움과 함께 경외감마저 느꼈을 정도다.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지구상의 건축물이라는 말이 과장만이 아닌 듯했다.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장벽을 꼽자면 베를린 장벽이지 싶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이 장벽을 넘다가 죽은 사람만 기록상으로 최소 136명이다. 기나긴 시간 차이에도 만리장성과 베를린 장벽의 목적은 ‘방어와 차단’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만리장성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베를린 장벽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넘어가는 것을 저지하려고 지어졌다. 하지만 둘 모두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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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축조 이후에도 북방민족들이 침입해 5호16국 시대나 원(元)·청(淸) 왕조 등을 통해 중국을 지배하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 역시 30년이 채 안 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탈냉전 흐름 속에 무너진 듯하던 장벽이 몇 년 새 부쩍 늘었다. 잦아진 지역 분쟁과 난민 문제가 주원인이다.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뺏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국경 약 2,000㎞에 ‘우크라이나 대장벽’을 구축 중이다. 난민 문제로 골치 아픈 유럽 국가들은 너도나도 방어벽을 올리고 있다.

헝가리는 지난해 세르비아 국경에 방벽을 설치했고, 불가리아·그리스도 난민들이 넘어오는 터키 국경에 담장을 높이 쌓았다. 최근 영국과 프랑스까지 가세해 칼레 난민촌에 대형 장벽을 만들기로 결정했다는 외신보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마저 멕시코 국경에 ‘트럼프 장벽’ 설치를 공언하고 있으니 ‘장벽 쌓기’ 경쟁이라도 붙은 것 같다. 개방과 소통을 말하는 21세기에 방어와 차단이 봇물을 이루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리적인 장벽이 마음의 문까지 닫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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