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정부가 물류대란 해소 방안을 두고 아슬아슬한 외줄 위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해운업계는 어떤 식으로든 하역비를 마련해 전 세계 8개 항만 인근에서 떠다니는 35만여개의 컨테이너박스를 항구에 내려야 물류대란의 불길이 잦아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항만에 내린 짐을 육상으로 나르는 문제 △한진해운에 대한 선주사 및 터미널사들의 대규모 소송전 △한진해운 영업망 붕괴 △한국 해운산업에 대한 신인도 하락 같은 장기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어쨌든 짐을 풀어놓으면 화주(貨主)들이 자신의 짐은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저지 파산법원이 지난 9일(현지시간) 한진해운의 ‘선박압류 금지 요청(스테이오더)’을 승인하면서 한진해운 채권자가 항구에 내린 화물을 볼모로 잡을 가능성도 사라졌다.
문제는 물류대란 단기 해법의 핵심인 하역비가 정확히 얼마인지, 또 이 하역비를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해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필요 하역비가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문제부터가 관건이다.
법원은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짐을 모두 내려놓기 위해 1,700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지만 해운업계와 채권단 사이에서는 1,000억원이면 충분하다는 의견부터 3,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다양한 예상이 나오고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하역비는 협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컨테이너박스 하나당 얼마 하는 식으로 단순계산해 총비용을 산출하기 어렵다”며 “한진해운이 자금을 대거 확보했다는 소식이 퍼지면 오히려 하역비용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화물 인도 지연에 따른 손해가 극심한 화주들은 자신들이 하역비를 대는 조건으로 짐을 내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하역비는 결과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미국 롱비치터미널 인근에 대기하던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화물에 대해 하역비를 부담하겠다고 미국 법원에 제안하기도 했다.
한진그룹이 마련한 하역비가 모자랄 경우 이를 정부가 대신해서 내줄지도 관건이다. 한진은 당초 1,000억원을 마련해 한진해운에 지원하기로 발표했지만 대한항공 사외이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현재로서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출연(400억원)만 가능해진 상황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지원은 배임이 될 가능성이 크고 조 회장에게 사재출연을 더 요구하는 것도 법적 근거는 없다”며 “애초에 한진해운이 돈이 없어 법정관리를 신청한 만큼 정부가 채권단에 보증을 서 우회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게 하는 방안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최종 해결사’로 나서더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추이를 지켜보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조 회장의 400억원과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의 100억원을 투입해 차례로 짐을 내리고 추석 연휴 이후 대한항공 이사회의 판단을 지켜본 뒤 불가피하다면 지원에 나서 물류대란의 불을 잡는다는 것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한 뒤 한진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