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 우려, 장병 대피’ 대대장의 슬기로운 판단
일단 대피, 생활관 안전 진단 확인 후에야 복귀
지진 발생 직후 부모들에게 ‘안전하다’ 문자 발송
상급 부대 신속·정확한 긴급 업무 처리도 돋보여
경주 지진으로 국민이 불안에 떨던 12일 밤, 육군의 한 대대장이 결심을 굳혔다. ‘병영생활관(막사)을 떠나 연병장에서 숙영한다.’ 여진이 닥쳐 병사들의 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 장병은 연병장에서 천막을 치고 밤을 보냈다. 이튿날 건물에 대한 정밀 진단 끝에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오고서야 장병들은 텐트를 접고 생활관에 들어갔다.
육군 50사단 122연대 1대대(경주 대대) 장병들이 12일 ‘지진의 밤’을 이렇게 보냈다. 대대장 이재현 중령(43세·육사 53기)은 지진 1·2파가 닥친 순간부터 비상 근무에 들어가 전 장병의 가족에게 ‘안전한다’는 메시지부터 보냈다. 각 중대별 밴드와 생활관별로 설치된 문자 발송 가능 수신 전용 핸드폰이 병사들의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다음 단계는 대피 여부. 수차례 리모델링을 거쳐 생활에는 불편이 없지만 생활관의 건축년도는 1988년. 고민하던 이 대대장은 사단 본부에서 보낸 ‘여진이 올 수도 있다’는 정보를 접한 뒤 일단 대피한다는 단안을 내렸다. 이 때가 밤 11시30분. 전 장병들은 개인화기 등 장비와 주요 문서, 대대 장비를 챙겨 연병장에 텐트를 쳤다. 마침 신형 텐트가 보급돼 숙영 준비 시간이 빨랐다. 대구에 위치한 50사단 본부도 지진 발생 즉시 초기 대응반을 소집, 경주대대 전원이 생활관에서 대피해 숙영에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을 때까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대장 이 중령은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화상 및 유선을 통해 내려오는 사단 본부의 정보 덕분에 상황 판단을 빨리 할 수 있었다”며 “부대원들의 신속하고 침착한 대응에도 내심 놀랐다”고 말했다. 매월 수 차례씩 야외 숙영 훈련을 실시해 왔지만 장병들이 불시의 대피명령을 착오 없이 수행하는 모습에 감명까지 받았다.
이 대대장은 다음날 아침 다시 한번 놀랐다. 국방시설본부의 진단팀이 아침 일찍부터 부대를 찾아와 건물 안전 점검에 들어간 것. 진단팀은 생활관 뿐 아니라 강당과 식당 등 건물 전부를 점검하고 ‘일부 균열이 발생해 복구할 필요가 있으나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가 13일 오후 2시30분. 신속한 출동과 진단 덕에 ‘며칠은 야외에서 천막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장병들은 대피 14시간 만에 생활관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50사단의 긴급 요청이 제2작전사령부와 국방부 국방시설본부라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도 말 그대로 ‘긴급’하게 처리된 것이다.
‘경주 지진 발생’ 소식을 접하고는 경주대대에서 군 복무 중인 아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J씨는 “부대에서 바로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연락해주고 안전을 위해 긴급 대피까지 시켰다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모든 부모들도 같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50사단 경주대대장 이 중령은 “평소의 재난재해 대비 매뉴얼과 사단의 정보 판단에 따른 것일 뿐”이라며 “비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한 부대원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