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기업·비영리조직을 막론하고 탁월한 리더가 되기 위한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시대 환경의 핵심 원리를 파악해내는 안목, 즉 역사적 시대정신일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대결한 박근혜·문재인 후보 모두 뛰어난 리더임에 틀림없지만 TV 토론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다. 두 사람 중 누구도 ‘21세기’라는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산업사회와 전혀 다른 21세기 시대정신에 대한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역사의식이란 최근 보수와 진보 진영 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 해석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역사의식은 현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다. 그런데 현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근시안적으로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면만 봐서는 안 되며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 연결되는 장구한 역사의 흐름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가장 기본적 출발점은 역사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재의 모든 특성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됐고 또 미래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영원불변의 진리처럼 애지중지해온 제도나 시스템·이념·가치관 중 상당수가 결코 절대 선이 아니다. 과거 특정 시점에서 당시 시대정신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시대정신이 바뀌면 더 이상 유용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대안으로 대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100여년 만에 처음 보는 시대정신의 대전환이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다. 모더니즘, 이성, 효율성, 양적 성장, 수직적 피라미드형 조직, 경쟁, 시장 거래 관계 등으로 대표되던 20세기 산업사회가 막을 내리고 포스트모더니즘, 감성, 창조성, 질적 성장, 수평적 네트워크형 조직, 협력, 공동체 관계 등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21세기 환경이 급속하게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조직·국가를 막론하고 그동안 익숙했던 20세기 시대정신을 버리고 새로운 21세기 시대정신에 맞게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지 않으면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희생양이 될 것이다.
특히 용서를 모르는 냉정한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적자생존이 결정되는 기업은 환경 변화와 시대정신 전환에 신속하게 대응해 새로운 환경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변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어떤 경영 모델이나 베스트프랙티스도 절대 영원할 수 없다. 모두 각 시대 환경의 요구에 대한 전략적 대응 과정에서 탄생한 산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경영자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80%가 넘는 전무후무한 점유율을 과시하며 영원할 것 같던 포디즘도 1930년대에 급속하게 무너졌다. 지난 100여년간 세계 시장을 지배하며 전 세계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온 초우량 기업들의 상당수가 최근 사라졌으며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리스트가 통째로 바뀌었다.
이렇게 볼 때 기업경영은 내부의 강점이나 핵심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외부 환경의 요구에 적응하는 것이 핵심이 돼야 한다. 흔히 핵심 역량과 핵심 가치에 집중하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 환경의 본질이 크게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만 맞는 말이다. 시대정신과 외부 환경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하면서 기업에 전과 전혀 다른 요구를 할 때 기존의 핵심 역량과 핵심 가치에 집중하는 것은 치명적 생존 위기를 초래하는 핵심 경직성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장기간에 걸쳐 변하기도 하고 빈번하게 급변하기도 하지만 변화는 필연적이다. 이렇게 볼 때 기업경영의 출발점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다. 골프에서는 몸 안쪽에서 시작해 바깥쪽으로 골프클럽을 던지듯 휘두르는 ‘인사이드-아웃’ 스윙이 정석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업경영은 정반대다. 시대마다 변화하는 외부 환경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해 이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유연하게 내부 구조와 역량·가치관을 바꾸는 ‘아웃사이드-인’이 경영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