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식품보국·K푸드 세계화' 큰뜻 이루고…별이 된 식품업계 1세대

고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1924~2013)고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1924~2013)




고 함태호 오뚜기 창업주(1930~2016)고 함태호 오뚜기 창업주(1930~2016)


고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1920~2016)고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1920~2016)


고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1919~2014)고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1919~2014)


고 원경선 풀무원 창업주(1914~2013)고 원경선 풀무원 창업주(1914~2013)


한국 식품산업의 현대화를 이끌었던 식품업계 1세대 창업주들이 세월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들은 누구보다 식품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식품보국’ 외길에 매진해 오늘날 K푸드 세계화의 기틀을 닦은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오뚜기(007310) 창업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이 지난 12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함 명예회장은 1969년 오뚜기식품공업을 설립하며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 그해 국내 최초로 카레를 생산하고 토마토케첩, 마요네즈, 후추 등을 잇따라 출시하며 중견 식품기업으로 오뚜기를 키워냈다. ‘인류의 식생활 향상과 건강에 이바지하자’는 함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을 앞세운 오뚜기는 국내 식품기업 중 가장 많은 40여종의 1위 제품을 보유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지난 4월에는 대상(001680)그룹 창업주인 임대홍 창업회장이 9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임 창업회장은 1956년 부산에 대상그룹의 전신인 동아화성공업을 설립하고 독자 기술로 ‘미원’을 출시해 국산 조미료 시대를 본격적으로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탁월한 경영자이기 이전에 연구개발과 기술력을 누구보다 중시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생전에 ‘회장’이라는 호칭보다 ‘발효 박사’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을 정도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사옥 인근에 연구실을 두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통 발효식품 연구에 매달렸다.

앞서 2013년에는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경선 풀무원(017810) 원장이 99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평생을 농부로 지낸 고인은 1955년 경기도 부천시에 풀무원농장을 세운 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초기만 해도 두부와 콩나물 등에 주력했지만 이후 장남인 원혜영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 원장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풀무원식품을 설립하며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같은 해 6월에는 ‘백세주’로 유명한 배상면 국순당(043650) 회장이 89세로 영면했다. 배 회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명맥이 끊겼던 한국 전통주를 복원해 맥주와 소주가 주도하던 주류시장에서 전통주 대중화를 이끈 주역이었다. 배 회장은 1992년 독자 개발한 생쌀발효법으로 만든 백세주를 출시해 돌풍을 일으켰고 이후 전통주 복원과 막걸리 세계화에 여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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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에는 ‘라면의 대부’로 꼽히는 전중윤 삼양식품(003230) 명예회장이 95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1963년 출시된 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은 배고픔에 허덕이던 우리 국민에게 한줄기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삼양라면이 출시되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공장을 찾아 시식행사를 열 정도였다. 당시 삼양라면 가격은 10원에 불과했는데 적자가 날 것이라는 임직원의 반대에도 전 명예회장이 “서민의 배고픔을 덜어주기 위한 식품이 비싸서는 안 된다”고 못박은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식품업계 창업 1세대들은 생전에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는 일찌감치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세운 뒤 대상그룹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고 함태호 오뚜기 창업주는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4,200여명의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안겼다. 또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도 보유하고 있던 주식 전량을 처분해 양조학교 설립에 보탰고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도 자신의 호를 딴 이건식품문화재단을 만들어 매년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한국 식품산업의 초석을 놨던 창업 1세대들이 잇따라 운명을 달리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업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창업주들도 있다. 윤덕병(89)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매일같이 출근해 경영현안을 살피고 신춘호(84) 농심(004370) 회장도 직접 신제품 개발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재철(81) 동원(003580)그룹 회장 역시 경영일선에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식품업계 1세대 창업주는 누구보다 배고픔을 겪으며 자랐기에 정도경영과 사회공헌활동을 중시했다”며 “다른 업종의 창업주보다 장수한다는 것도 공통된 특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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