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이연선 경제정책부 차장





추석 민심을 훑고 돌아온 20대 국회의원들이 첫 국정감사 채비에 들어갔다. 국감은 본래 국회가 정부에 맡긴 나랏일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살피는 일이지만 의원들이 볼 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무대다. 그리고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무대의 열기는 더 뜨거워진다.

5년 전에도 그랬다. 지난 2011년 9월 당시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그야말로 구름 떼처럼 많은 취재진을 몰고 다녔다. 당시 추석을 지내며 ‘안철수 열풍’이 거세져 박 전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아슬아슬하게 1위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그가 평소 워낙 말을 아끼다 보니 국감장에서의 한 마디는 곧 공약으로 간주됐고 기사 제목으로 뽑혔다. “내 꿈은 국민이 행복한 나라”라는 발언은 대선 출사표로 이해됐다. 옆자리에 앉아 귓속말을 나누던 유일호 의원은 ‘옆박’이라 불리며 훗날 박근혜 정부의 세 번째 경제부총리로 영전했다.


정치 이슈에 스포트라이트를 뺏긴 경제 문제는 뒷전이었다. 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3%대 저성장에 갇힌 것도 바로 2011년부터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마무리투수였던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야구용어에 빗대 화려한 플레이보다 단타 위주의 간결한 ‘스몰 볼’ 전략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정부정책은 이미 추동력을 잃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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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는 정부와 정치권의 십자포화를 맞으면서도 기준금리를 내릴 수 없다고 버티다가 결국 2012년 하반기 들어서야 뒤늦게 금리를 두 번 내렸다. 당시 금통위 멤버였던 한 위원은 “기준금리를 더 일찍 내렸어야 했다”고 때늦은 후회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번 국감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20대 국회의 첫 국감이지만 관심은 온통 여야 잠룡들의 세 싸움에 쏠려 있다. ‘복지정책 정면충돌’이 예상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포함해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은 이미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거나 채택이 추진되고 있다. 흥미진진한 대권 경쟁은 국감을 대선 전초전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자 눈치 빠른 공직사회부터 움직임이 달라졌다. 전현직 고위 관료들은 막판 자리 욕심을 부리고 있다.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가고 당초 이야기가 나오던 IBK기업은행장 자리는 청와대에서 일하던 다른 사람의 몫으로 교통정리 됐다는 말도 들린다. 아래에서는 ‘순장조’가 되지 않기 위해 해외 근무를 지원하거나 본부에 들어오는 시기를 공공연히 미룬다. 정권 임기가 1년 남짓 남았을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씁쓸한 풍경이다. /이연선 경제정책부 차장bluedash@sedaily.com

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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