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물값





물은 전통적으로 돈을 지불하는 재화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하지만 수도인 서울에서 가가호호에서 물값을 치르기 시작한 역사는 예상 밖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서울은 지형상 어느 곳이나 뚫어도 우물이 나오는 구조이지만 임진왜란 이후 한양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이에 따른 하천과 우물의 오염,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물을 길어다 파는 직업으로서 물장수가 처음 나타난 것이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였다고 한다.


물을 져 나르는 인부 등을 관리하는 객주의 일종인 수상(水商)이 나타났으며 이 물장수들은 서울의 골목골목을 구획 지어 급수를 담당했다고 한다. 이들의 뒤에는 일종의 전주(錢主)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날의 영업권처럼 급수권을 서로 사고팔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상하수도 요금처럼 일정 기간이나 물지게의 양에 따라 분세(分稅)를 받았다고도 한다. 20세기 초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의 사진에는 물지게를 옮기는 이색적인 모습이 단골로 담길 정도였으며 이 당시에는 1,000여명의 물지게꾼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련기사



1908년 영국인들이 설립한 대한수도회사가 처음으로 서울에 상수도를 공급했으나 이후에도 물장수들은 계속 존재했다. 수도 보급 사정이 미미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깨끗한 우물이나 수돗물을 받아서 미보급 지역으로 배달하는 형태였다. 일제시대에 이런 물지게를 져 나르던 사람 중에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고학생들이 많아 김동환의 시 ‘북청 물장수’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한국수자원 공사가 최근 광역상수도 요금 인상안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고 논란이 되고 있다. 생산원가 대비 너무 낮은 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공사와 국토부의 설명에도 4대강 부채상환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이 있다. 한국의 물값은 세계적으로도 싼 편에 속한다. 한국이 물 부족국가로 지정된 지도 23년이 지났고 갈수록 물 사정은 악화하고 있다. 물값의 타당성 논란에 앞서 물을 ‘돈 쓰듯’ 아끼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온종훈 논설위원

온종훈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