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최저가낙찰제의 덫





1995년 6월29일 당시 최고급백화점이었던 삼풍백화점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대형백화점이 20초 만에 폭삭 주저앉으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 사고로 대한민국 역사상 6·25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무려 502명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부실시공. 4층으로 설계된 건물을 5층으로 불법 증축했고 기둥의 두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돈 몇 푼 아끼려는 탐욕이 단일 사고로는 건국 이래 최대의 참사를 야기한 것이다.


이 사고로 건설공사나 물품납품 입찰제도에 일대 변화가 일었다. 적격심사제도도 이때 도입됐다. 최저가 입찰 순으로 업체를 선정하되 공사계약 이행능력도 함께 심사해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최저가낙찰제로만 선정하다 보니 부실공사가 만연하고 이에 따른 안전사고도 빈번한 탓이다. 이후 적격심사제는 계속 강화돼 급기야 최저가낙찰제 폐지에까지 이른다. 정부는 올해부터 300억원 이상 공공 공사에 대해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하고 공사수행 능력과 사회적 책임 등을 종합평가하는 종합심사 낙찰제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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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형 공공 공사뿐이다. 유감스럽게도 최저가낙찰제 폐해는 여전하다. 지난 6월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도 마찬가지다. 최저가낙찰제로 인해 시공사 선정은 물론 발주부터 준공까지 전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기술 표준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병원들의 최저가낙찰제로 1원에 의약품을 대규모로 구매하는 ‘1원 낙찰’사례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파산한 제약업체도 있다.

최근 최저가낙찰제로 인해 초등학교 우유 급식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올해 도입된 이 제도로 지난해까지 200㎖ 기준 400원대였던 공급가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200원대까지 떨어지자 낙찰받은 대리점이 아예 공급을 중단해버렸기 때문이다. 우유는 남아도는데 학교에서는 이를 먹을 수 없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학교마저 경비절감만을 외치다 최저가낙찰제의 덫에 빠진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이용택 논설위원

이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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